조명환 목사

 

정교회(Orthodox Church)하면 신앙적으로 대단히 거룩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로 느껴지는 반면 고집불통, 협상불가, 근본주의, 촌스러움, 대개 그런 이미지들도 있다. 

우리가 캐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 전통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교회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그리스, 터키, 중동지역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콩나물시루같이 밤낮 붐비는 예수님 무덤교회(성묘교회)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는 십자가 주변에 주렁주렁 호박넝쿨처럼 매달아 놓은 장식들이 있다. 

어딜가나 정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예배처소는 비슷한 분위기다.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교회 지하에 있는 메시야 탄생장소에 새겨놓은 14각 은별과 그 주변도 비슷하다. 

거룩한 자리란 인상보다는 어쩐지 쌍팔년도 시골집 온돌방에 와 있는 분위기다.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자기들의 전통과 주장에 따른 것이겠지만 우리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정교회하면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믿음의 정체성에 충실하겠다는 순수한 영적 옹고집(?)은 사실 존경스럽다. 

예를들면 그리스의 마테오라 수도원에 올라가보면 그 아찔한 기암절벽위에 올라가서 세상과 담쌓고 오직 수도생활에 열중하는 정교회 수도승들을 만나게 된다. 

정말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려는 그 몸부림에 존경을 금할 수 없다. 

관광객들이 하도 몰려오니까 이번엔 마테오라가 오염되었다며 더 철저하게 외부와 봉쇄된 아토스산(Mt. Atos)으로 옮겨가는 수도사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정교회라고 해서 수도사들처럼 세상과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건 아니다. 

좀 많이 열렸다고 비판받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일원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기후문제, 식량위기 등 지구촌 민생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려는 노력도 한다. 

다만 다른 나라 정교회와는 달리 러시아 정교회만은 유독 기독교 근본주의, 러시아 제국주의, 반서방주의에다 에큐메니즘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정교회에 이번엔 문제아가 불쑥 나타나 최근 교회 질서를 문란시키고 있다. 

바로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이자 정식칭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다.

내가 이 분을 두고 문제아 어쩌구 하는 것은 직분으로 따질 경우 대단히 모욕적인 발언, 아니 불경죄에 속한다. 

러시아 정교회는 3대 기독교 분파, 즉 천주교·개신교·동방정교회 중 하나인 동방정교회에서도 가장 큰 교파다. 

더구나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러시아 내에만 약 1억 명에 달하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총대주교는 어떤 파워를 갖고 있는가? 

국가원수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군대의 사열도 받는다고 하니 완전 수퍼 특권층이다. 

그 달콤한 권력의 꿀맛에 정신이 혼미해 지신건가?

그가 최근 지구촌 밉상으로 데뷔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과 찰떡궁합을 이루어 '전쟁광'으로 비난받는 푸틴에 대한 아첨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엔 "전쟁서 죽으면 죄가 다 씻긴다"고 말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그의 나이 아직 75세. 

아직 망령이 들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전쟁에서 죽으면 죄가 다 씻긴다고? 

신학을 공부했다는 레닌그라드 신학대학에서 그렇게 배웠는가 묻고 싶다.

푸틴의 30만명 군 동원령이 내려진 당일 예배 시간에는 "용맹하게 전쟁터로 가서 병역 의무를 다하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설교했다.

그러자 SNS에서는 "키릴 총대주교를 최전방으로 보내 그의 죄를 씻게 해주자"고 비꼬았다.

지난 2012년 푸틴이 장기집권을 시작하자 '신의 기적'이라고 칭송하기도 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서방에 맞서는 '신성한 투쟁'이라며 "하나님은 거짓된 서구 자유의 세계가 아닌 러시아의 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자 로마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키릴 총대주교에게 "푸틴의 복사(服事·사제 등을 보조하는 평신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점점 코너에 밀리는 푸틴에게 아양을 떨고 있는 키릴 총대주교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의 위신이 추락하고 있지 않은가? 

대주교는 이마에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얼굴 그림이 들어있는 요란한 두건을 쓰고 다닌다. 

그의 황당한 푸틴 찬가를 들으시고 두건 속의 예수님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러나 생각해 보자. 

어디 권력의 꿀맛에 빠져 자신이 성직자란 사실도 까먹고 횡설수설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밉상 목사님, 밉상 신부님이 어디 모스크바에만 있는가?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많다.

정교회 안에도 기를 쓰고 수도원으로 향하는 수도승이 있는가 하면 세상 권력자의 비위를 살펴 보신과 영화를 꾀하려는 가짜 선지자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시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오늘날 누구를 말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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