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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N(기독교방송네트워크) 설립자인 팻 로벗슨 목사가 향년 93세로 지난 8일 버지니아 비치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는 해병대로 한국전쟁에 파견되어 군대생활도 했다. 

예일대 법대 출신에다 뉴욕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CBN이란 비영리기독교방송국을 설립하여 간판프로그램인 ‘700클럽’(The 700 Club)을 55년간이나 진행해 왔다. 

이 ‘700클럽’이 가수들이나 데려다 노래시키고 신변잡기나 늘어놓는 너절한 방송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55년을 이끌어 온 점은 장한 일이다. 

여기서 주고받는 말들이 흔하게 설화를 불러오곤 했다.

CBN은 지금도 24시간 기도 서비스와 함께, 200개 국가에 122개 언어로 번역된 케이블, 방송 및 위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또 고향인 버지니아 비치에 기독교 사립대학인 리젠트(Regent) 대학교를 설립하여 총장 겸 최고 경영자로서 대학을 이끌기도 했다.

198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뛰어들었으나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지고 말았다. 

그후 보수 개신교 정치 옹호 단체인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을 창립하기도 했다.

대충 훑어봐도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로벗슨 목사가 더 유명한 건 그의 독설 때문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그에겐 ‘극우목사’란 별명이 붙어 다니곤 했다. 

그래서 이 분의 특징은 반공, 반동성애, 반이민, 반UN, 반유대주의, 반캐톨릭, 반유색인종. . . 눈꼴 사나운 건 모두 반대로 몰고 나갔다. 

한때는 세계종말의 때를 알고 있다는 헛소리를 했다가 나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우고 차베스를 암살하자”는 엉뚱한 소리도 했다.

로벗슨 목사는 또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동성애, 낙태, 여권운동가, 이교도를 받아들인 당연한 대가”라고 심한 말도 서슴치 않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에 찾아온 것은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란 말도 했다.

방송 마이크에 대고 주섬주섬 늘어놓는 말이 독화살이 되어 정치적으로 비화 되고 미국 사회를 둘로 갈라 놓는 분열의 기수로 변했다. 

그가 기독교 보수주의를 위해 공헌한 장점들이 그런 독설로 모두 감산 취급되었다.

우리는 이런 근본주의 보수 꼴통 목사님에게서 뭘 배울게 있냐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한가지 배울 점은 있다고 본다. 확실한 자기 목소리, 바로 그것이다.

양심에 따라 자신의 신앙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용기는 사실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다. 

다만 그 용기가 극단주의에 치우쳐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하다면 제2의 팻 로벗슨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숨어 사는 그리스도인들’보다는 훨씬 더 복음적이다.

기독교는 순한 양이나 몰고 다니는 목동교회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격려한다. 

미주 한인교회나 한인교회 목사님들의 주특기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그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만들어 가고 이를 막아서는 이들에게 심판을 선포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건 약하다.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적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냥 시대적 풍조에 순응하고 조용히 동화되거나 침묵하는 정도, 굳이 옳고 그름을 따져보려고 덤비지 않는다. 

나 역시 무슨 선지자인양 이런 말을 함부로 쏟아 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사랑과 공의, 이걸 한몸에 실천하기가 그리 밥 먹듯 쉬운 일인가?

그럴지언정 고민은 해보자. 

세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묻고 지나가는 우리들의 이 영적 게으름과 타협주의, 혹은 혼합주의가 기독교를 회색지대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분노하시면서 독설을 날리셨다. 

이 말씀이 우리들의 천박한 언어생활을 합리화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분노에 우리는 주목하자.

교인들에게 팍 세게 질책할 것은 질책하고 울어야 할 때 함께 울어주는 목사님이 나는 존경스럽다. 

목사가 싸움꾼이 되라는 주문이 아니다. 

잘못은 매몰차게 지적해 주고 실패와 실수는 보듬어주고 용서해 주는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목사님이 그리운 것이다.

교회가 두 쪽이 나도 내 신앙 양심상 이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지조를 지키는 예언자적 목사님이 흔치 않아 보인다. 

천편일률적으로 순하고 얌전한 목사님들만 넘친다.

팻 로벗슨 목사는 지나친 독설로 이 세상 많은 곳에 상처를 주긴 했지만 자기 소신에 따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숨이 막혀서 근본주의 근처에 살라면 기절할 사람이다. 

그래도 배울 점은 있다.

미국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고 별세한 로벗슨 목사님이 하늘나라에서는 독설 대신 포용과 조화를 표방하며 백인종만 챙기는게 아니라 유색인종도 두루두루 살피는 포용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그 나라에선 참된 안식 누리시기를 . . .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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