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롱 타임 노씨(long time no see)'가 중국인과 원주민을 비하하는 말이란다. 

난 처음 듣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롱타임 노씨"라며 악수를 청하곤 한다. 

영어를 꽤나 잘하는 척 써먹어 온 말이다. 

그런데 스탠포드 대학교가 그런 편견이 배어있는 말은 사용 금지해야 한다고 들고 나왔으니 나 같은 사람도 놀랄 수밖에. 

"오랜만이야"란 이 말은 好久不이란 중국어를 직역한 말로 중국 이민자들이 영어를 단순화시켜 사용하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콩글리시가 있듯이 '칭글리시'인 셈이다.

스탠포드 대학이 '유해한(harmful)' 단어라고 웹사이트나 정보통신분야 언어에서 금지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한 단어는 그 것 뿐이 아니다.

인디언 섬머(Indian summer)도 있다. 

이젠 더위가 물러가나 싶은 10월 초에 느닷없이 닥쳐오는 폭염을 두고 우리는 인디언 섬머라고 부른다. 

이건 '게으른' 북미 원주민(Indians)에 대한 백인의 편견을 담고 있는 말이라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 말을 바꾸자고 온라인에서 시끌벅적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요주의 위험인물 명단'이란 블랙리스트(blacklist)도 '흑인' '블랙'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담고 있어 금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더한 말도 있다. 

우리는 '유가이즈'란 말을 얼마나 흔하게 듣고 사는가? 

표준말만 골라 써야 하는 주요지상파 아침뉴스 시간에도 앵커들은 유가이즈를 수도 없이 써 댄다. 

그것도 금지어라고? 

여러 명의 상대방을 지칭할 때 쓰는 you guys란 말은 '가이'란 말 때문에 사실은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가이란 '녀석, 놈' 그럼 유가이즈는 '네 놈들, 네 녀석들'로 들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상대방을 낮추거나 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친근하게 상대방을 부를 때 쓰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스탠포드가 문제 삼는 말은 가이란 말이다. 

즉 "가이란 남성 위주 또는 남녀 양성적인 성 정체성만 반영한다"는 이유로 금기어에 포함시킨 것이다. 

흔히 연설을 시작할 때 '신사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도 성(性) 정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서 그냥 everyone으로 바꾸라고 했다.

이런 스탠포드의 황당 발표에 월스트릿 저널이 시비를 걸고 나왔다. 

그래? 그럼 미국인을 지칭하는 '아메리칸'이란 단어도 금지어가 되어야 맞지 않나? 

왜냐면 남북 아메리카에는 무려 42개국이 있는데 유독 미국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아메리칸이란 말을 독점하는 것은 미국이 가장 중요한 나라인 것을 암시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메리칸은 'US 시티즌', 즉 미국시민이란 말로 바꿔야 된다고 맞받아치고 나온 것이다.

글쎄, 인종편견이나 성 불평등을 암시하는 말들은 당연히 유해단어로 금지시켜야 마땅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스탠포드 주장대로 먹혀 들어갈까?

교회로 시선을 돌려보자. 

기독교인 장례식에 가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했다가는 "아이고! 그건 불교용어예요. 어디 교회에 와서 그런 말을! 제발 말조심, 용어 조심하세요." 무식하다고 핀잔의 대상이 된다. 

기독교로 귀의했다는 말을 썼다가도 "아이고 귀의가 뭡니까? 그것도 불교용어예요." 

또 구박이다.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교회 용어가 어디 한 두개인가?

제일 흔히 쓰는 말이 교회당을 두고 성전이라고 부르는 말이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의 정성 못지않게 이민와서 피땀으로 모은 헌금으로 근사한 예배당을 세워 놓았으니 심정적, 상징적으로는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저리가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우리가 지은 예배당이 성전인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시대 성막이 발전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고 무너진 성전은 헤롯이 다시 재건하는 부산한 과정을 거치기는 했건만 지금 남아 있는 건 '웨스턴 월' 밖에는 없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은 예배처소는 예배당, 교회당이라고 불러야 맞는 말이다.

성가대가 아니라 찬양대, 소천이 아니라 별세, 영결식이 아니라 장례예식, 증경회장 대신에 전 회장... 

이렇게 바꿔써야 마땅하다고 외치고 외쳐도 전혀 바뀌는 기색이 없다. 

내 갈길을 가련다식이다.

롱타임 노씨나 유가이즈란 말이 정말 미국인들의 금지어로 등극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아니올씨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쓰는 용어만큼은 힘들어도 개선해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목사님 장례식에 가서 목사님의 명복을 빈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자.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목사님을 제사장이라 부를 참인가?

예배당이던 성전이던 서로 의미만 통하면 됐지 뭘 그리 꼬시랑 꼬시랑 옳고 그름을 따져서 뭐합니까? 

믿음, 그거 하나면 되는거 아닙니까? 

사실 그 말도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유명한 하이덱거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무슨 말을 골라 실천에 옮기느냐에 따라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고 품격 없는 싸구려 그리스도인이 될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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