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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부가 팜스프링스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저녁만 손녀를 봐달라고 했다. 

주말인데다가 애 보는 분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통사정을 했다. 

손녀와 놀기도 할 겸 못이기는 척 '호출명령'을 받아들였다. 

밤이 되어 전화가 왔길래 집안이 좀 써늘하다고 했더니 며느리 왈 "그래요, 아버님?, 당장 히터 올려드릴게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안에 더운 바람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니 팜스프링스로 벽에 붙은 온도조절기를 떼어 갔을 리는 없고 그 원격조절인가 거시기로 나를 놀래킨 것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지난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매년 열리는 세계최대 산업박람회) 미디어 행사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 회장님은 신차 모델을 끌고 나온게 아니라 사람 옆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로봇 개를 끌고 나와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 분 하는 말이 "매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들이 로봇개를 데리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정말 우리 생활 속에 로봇시대가 열릴 모양인가?

지난 연말 모 대학 부총장님에게 책을 선물로 받았다. 

제목이 우선 겁을 주는 분위기다. 

"세계 미래보고서-2022년 메타 사피엔스가 온다"였다. 

호모 사피엔스란 말은 그런대로 들어 봤는데 메타 사피엔스? 

책에서 설명하기를 "기술과 인간 상상력의 결합이 만들어 낸 신세계에서 살아갈 인류를 두고 '메타 사피엔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자기네들이 지어낸 모양이다.

그럼 메타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요즘 생각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메타, 메타를 입에 달고 다니는데 그게 무슨 뜻이죠? 

딱 부러지게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구글을 뒤져서 겨우 얻어낸 결론은 그리스어로 '초월'이나 '가공'을 뜻한다는 말이다.

최근 가장 핫한 언어중 하나가 '메타버스'란 말이다. 

버스 앞에 메타가 붙어 있으니 메타버스란 가공으로 만들어 낸 버스인줄 만 알았다. 

그런데 이런 무식쟁이가 있나? 

메타버스란 타고 다니는 버스가 아니었다.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유니버스)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가르침을 얻어내기까지 나는 그냥 맹추였다.

선물 받은 책에서 주장하기를 앞으로 정치와 엔터산업도 메타버스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더 엉뚱한 말도 했다. 

앞으로 가족이 죽으면 묘지, 납골당, 추모공원이 아니라 메타버스에 모시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챗봇으로 죽은 가족과 대화하고 메타버스 교회에 고인을 안치하고 죽은 가족과 대화뿐 아니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 목사가 이런 말을 들고 나왔으면 완전히 날나리 사이비교주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을 만한 엄청난 말을 태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로봇과 동거하는 세상이 온다고 주장한다. 

동거하는 건강도우미 로봇! 매일 약도 챙겨주고 혈압이나 당뇨 체크도 해 주는 로봇이라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로봇이 감성을 갖고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성관계까지 가능해 진다고? 

그럼 사람과 사람의 결혼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의 결혼시대도 열린단 말인가?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감동적이란 설교는 죄다 데이터로 집어먹은 설교로봇이 탄생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설교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부흥회 목사님이 탄생할 것이다. 

담임목사님이 출타 중이면 이를 대체할 로봇 목사님은 물론이고 세례식이나 결혼식을 집례하는 로봇 목사님도 등장할 수 있다. 

그럼 로봇이 세례받고 중생을 경험하겠다고 나선다면? 

쇠붙이에 손을 얹고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를 선포할 수 있는가? 

그래서 거절당하면 내친김에 세례를 주는 로봇 목사도 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다가는 "내가 바로 재림예수요!"라고 외치고 다니는 로봇까지 나타날 경우 이 혼란한 말세징후를 어떻게 교통정리하란 말인가?

미래를 내다본다는 미래학자들은 대개 뻥이 심하다.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문제는 이런 과학과 기술의 발전속도가 엊그제 김정은이 미국 쪽을 향해 쏘아 올린 극초음속미사일처럼 빨리지고 있는데 이를 뒤따르는 신학적 담론이나 신앙 윤리적 훈련은 전무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은 나처럼 무식하여 아예 그쪽 분야에서 무슨 난리법석이 벌어지는지 관심부족, 이해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난해부터 유튜브를 통해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침대에 앉아서 난닝구 바람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예배냐?"라고 주장하자 온라인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일은 이제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고 맞받아치면서 신학적 토론이 진행된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다.

그럼 메타사피엔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공지능이나 로봇,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질 다양한 신학적 잇슈에 대한 토론이나 가이드라인은 누가 마련해 줄 것인가? 

코로나가 아니라 이제는 오미크론의 수퍼 전파력 때문에 우리 모두 혼절지경이다.

그래도 정신줄은 놓지 말아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혁신과 메타월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확실한 신앙적 매뉴얼은 붙잡고 살아야 한다. 

그 매뉴얼을 쓰기 위한 영적 씨름이 우리 시대 교회들에게 주어진 공동 프로젝트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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