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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폭력으로 얼룩지면서 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아카데미의 가치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폭력이라니! 

그것도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면서 시청하는 라이브 방송 도중 일어난 일이니 그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자마자 다큐를 찍겠다고 현장에 뛰어든 배우 숀 펜이 이번 시상식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초대되어 전 세계에 우크라의 평화를 호소하도록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마당인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평화고 나발이고 분을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둘러대다니 나같은 사람도 "이건 아니라고 봐!"란 말이 절로 나온다.

폭력의 주인공은 배우 윌 스미스였다. 

그는 '킹 리처드'란 영화의 주연배우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장인 돌비극장의 제일 앞자리에 기분좋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동료 코미디언이자 이날 사회를 보던 크리스 록의 귀싸대기를 후려친 직후 발표된 남우주연상 시상식에서 정말 수상자로 지명되어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 쥐기도 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그에겐 생애 최초의 수상이었다. 

얼마나 영예로운 순간인가? 

그는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를 세계 최강 테니스 제왕으로 등극시킨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2년 전, 78페이지에 달하는 챔피언 육성계획으로 무장한 리차드 윌리엄스는 두 딸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불굴의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LA 남부 컴튼의 형편없는 테니스 코트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습을 거듭하며 딸들에게 그는 수없이 속삭였다. 

"세상은 날 무시했지만 너희는 달라, 존중 받게 할 거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윌 스미스에게 갈채를 보냈다. 

감동적인 실화 가족영화였다.

시트콤이나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둔 그였지만 2006년에 나온 영화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iness)'에서의 윌 스미스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한물간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이었던 크리스 가드너 역으로 열연했던 그는 가난뱅이 신세가 되어 결국 아내까지 집을 나가자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노숙자로 살아가면서 그 아들을 위해 6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인생 마지막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그의 휴먼스토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극중에서 그렇게 감동적이었던 윌 스미스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아내에 대한 빈정대는 조크가 맘에 들지 않았어도 그 기쁘고 중요했던 순간을 폭력으로 말아먹은 댓가는 아주 엄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폭행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연예전문매체 TMZ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네티즌 중 다수는 '록의 농담이 지나치지 않았으며, 스미스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응답했다.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를 향한 록의 농담이 도가 지나쳤다는 응답은 38%인 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농담'이라는 응답은 62%를 차지했다. 

'스미스가 록의 뺨을 때린 것은 공격이며 구타'라고 답한 사람은 83%에 달했다.

'록이 맞을 만 했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일부 네티즌들은 폭력을 행사한 스미스를 경비원을 시켜 그 자리에서 끌어내지 않은 것은 아카데미의 실수라느니 그에게 안겨준 트로피를 당장 빼앗아야 한다는 격한 반응이 많았다.

 눈물범벅이었던 그의 '수상소감이 감동적이었다'는 답변은 15%, '어처구니 없는 정당화다'라는 답변은 85%로 나타났다.

아카데미 측은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는데 혹시 흑인 배우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란 부메랑을 맞을까 조심스럽게 몸을 사리는 듯하다. 

아무래도 오스카 트로피를 반납하거나 아카데미 근처에는 얼씬 못하게 하는 중징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윌 스미스의 행동이 아쉽기만 하다. 

그 좋은 날 한번만 참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참지 못 하는게 어디 윌 스미스 뿐이던가?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분노 때문에 유발되었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거절당하자 가인은 아우 아벨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해 살인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성경은 수도 없이 분노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신다.

모든 사람에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다른 층에서 너무 오래 서면 금방 짜증이 난다. 

그로서리 익스프레스 레인에 서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물건이 10개 이상인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10개인지 세어보겠다고 덤비지 않는 이유는 분노조절 기능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미스는 이튿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젯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내 행동은 용납할 수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한번 욱하는 걸 참지 못하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매사에 불쑥불쑥 화내는 걸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 종치는 수가 있다. 

좀 참고 살자.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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