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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란 말이 뼈속 깊이 공감을 주는 한 주간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계속 미사일을 쏘아 대고 있다.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듯 쉽게 먹어 치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푸틴의 오만은 오판이었다. 

그때의 우크라가 아니었다.

우크라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를 암살하기 위한 암살조 400여명이 수도 키에프에 잠입했다는 섬뜩한 루머에도 꿈쩍않고 "우크라여, 영원하라"며 항전의지를 외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가입국가란 이유로 나토군의 파병을 머뭇대고 있고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핵폭탄급 금융제재만 외치고 있을 뿐 지상군 투입으로 러시아 탱크와 미사일에 맞서주질 않고 있다.

목숨이 풍전등화에 놓인 위태로운 젤렌스키에게 겨우 도망갈 길을 열어 줄테니 키에프를 빠져나가라고 권유했건만 젤렌스키는 단호하게 미국의 도피권유를 거절하고 우크라를 사수하겠다고 나오자 그를 두고 '정치 초짜 대통령'이라느니 '코메디안 출신 대통령'이라고 농담 따먹기를 즐기면서 은근히 러시아 편을 들고 나선 한국의 진보 좌파쪽 사람들이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미군 철수가 시작된 날 중동으로 도망가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2~3일 안에 우크라는 망하고 젤렌스키는 줄행랑을 칠 것이란 국제사회의 삐딱했던 전망과는 다르게 젤렌스키의 목숨을 건 항전의지가 우크라 국민들의 가슴에 애국심의 휘발유를 쏟아 부었다.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나섰고 미스 우크라이나가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전투에 나섰다. 

폴란드 등 주변국에 살던 우크라 젊은이들이 조국을 수호하겠다며 피난민과 역주행하여 키에프로 몰려들었다. 

전직 대통령도 거리에 나와 전투지휘에 나섰다. 

도심에 진입한 러시아 탱크 앞에 몸으로 막아서는 탱크맨도 있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이런 목숨을 내건 희생과 모험을 거쳐 쟁취되는 것이란 소중하고 아픈 총천연색 비극의 시네마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지금의 우크라요, 수도 키에프에서 벌어지고 장면들이다. 

조롱의 대상이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우크라의 용감한 캡틴으로 올라섰고 자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지구촌 모든 국가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삽시간에 우크라 지지 물결이 지구촌에 퍼져나갔다. 

"우크라는 승리 할 것"이라며 그 나라의 국기색인 노랑과 파랑색이 전 세계도시를 물들였다. 

파리의 에펠탑과 LA 시청 청사에도 노랑과 파랑의 물결, 나이아가라 폭포마저 국기색으로 조명을 비추었고 폴란드, 포루투갈, 이스라엘에서도 우크라를 지원하는 평화의 집회가 열렸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무려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하기도 했다. 

우크라의 승리, 우크라의 평화,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우크라의 국기는 위는 파랑색, 밑은 노랑색으로 되어 있다. 

무슨 상징인가? 

밑은 밀을 주산지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밀밭을 상징하고 위는 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갖고 있는 이 나라는 흑토지대로 유명하다. 

까만 땅을 말한다. 

이 흑토에서 길러낸 밀 수학량은 '유럽의 빵공장'이라 불릴 만큼 유럽의 밀가루를 책임지는 나라다. 

세계 밀 생산량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양인가?

그 파란하늘 노란 밀밭에 마사일을 쏘아 평화를 박살 낸 침략자가 푸틴이다. 

정든 조국을 등진 채 66만명(3월 1일 현재)이 피난길에 올라 피눈물을 흘리게 한 악당이 푸틴이다. 

인구 4천4백만 가운데 4백만 명의 우크라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UN이 발표했다. 

그래서 그를 두고 '21세기 히틀러' 혹은 '살인마'라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성이 안찬다. 

키에프 지하철에 갇혀 있는 어린아이 한명이 CNN 현지 인터뷰에서 '푸틴은 히틀러'라고 중얼거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공유하며 살아온 자유 민주주의 가치가 한 악당의 손에 처연하게 유린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랴! 

아무리 우크라의 애국심이 하늘을 찌른다해도 결국 이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란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에 비해 전차가 5배가 많고 전투기는 15배가 많다. 

1991년 우크라가 독립을 쟁취할 당시는 세계 4위 군사대국이었고 핵 보유 규모도 세계 4위였으나 부다베스트 핵 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함으로 핵 무기도 모두 포기한 신세가 되었다. 

꼼짝없이 힘없는 다윗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무기만으로 좌우되는가? 

다윗이 손에 든 것은 하나님의 빽과 돌맹이 몇 개 뿐이지 않았는가?

사순절을 맞는 우리는 우크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침략의 총성이 멈추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나라의 풍요로운 밀밭에 다시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우크라발 역사 교과서의 교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머지않아 개최될 제94회 오스카상 시상식을 앞두고 12개 부문 최다 후보에 오른 금년 최고의 화제작 영화 '파워 오브 도그(Power of the Dog)'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시편의 성경 말씀으로 막을 내린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시편 22:20).

시방 우리의 기도와 흡사하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크라이나를 '개의 세력'으로부터 구하소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그 나라를 지켜주소서!"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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