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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습 때문일 것이다. 

지난 2년여 동안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 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한다. 

한인교계가 이렇게 냉랭한 적이 있었는가? 

그래 맞다. 

아직도 코로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된다. 

그래도 너무 적막하고 스산하다.

12월은 나눔의 계절이다. 

독생자 예수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사랑의 계절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의 마음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나눔의 계절이 옛날 모습이 아니다. 꽁꽁 얼어붙어 가고 있다.

이때 쯤이면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이 한인타운 여러 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런데 금년에는 미국 최대 한인밀집지역이라는 LA한인타운에 세워진 자선냄비는 딱 3개. 

한남체인과 김스전기 앞, 그리고 또 한곳의 쇼핑몰에서는 일주일에 3일만 허락받았다고 한다. 

자선냄비 공간을 허락하는 마켓이나 쇼핑몰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게 변하고 있는 세상 인심인가?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인타운엔 '사랑의 쌀'이 불우한 이웃들에게 전달되곤 했다. 

그 사랑의 쌀이 지금은 완전 행방불명 상태다. 

딱 10년 전 우리 신문의 '교계 10대 뉴스' 제목 중 하나가 '연말 불우이웃 돕기 위한 사랑의 쌀 나눔운동 활성화'였다. 

남가주 각 개체교회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여 2009년부터 매년 사랑의 쌀 나눔운동을 펼쳤다. 

초창기엔 LA총영사관과 LA한인회도 파트너가 되어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별히 우리와 가까운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불우이웃들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면서 한인교회들은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금년엔 그런 사랑의 쌀도 없고 그걸 추진하는 단체들도 멸종상태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불우이웃들은 옛날보다 아마 2배, 3배 늘어났을 게 뻔한데 아기예수 때문에 고마워해야 할 사랑의 실천은 온데 간데 없이 증발된 우리들의 한인교계...

이런 나눔의 계절엔 흔히 '큰 교회'라고 소문난 한인 교회들의 책임과 관심이 절실해진다. 

대부분의 큰 교회는 이제 이민 1세 담임목사는 퇴장하고 2세나 1.5세 목회자로 세대교체가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큰 교회라고 알려진 교회의 담임목사들은 40대에서 60대 미만의 젊은 목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 

교회당 밖으로는 한 발자국을 내딛는 일이 없는 폐쇄성이 문제다. 

유아독존이란 표현도 맞을 것 같다. 

물론 개체교회 목회보다 밖으로만 내대며 '회의중독'에 빠진 목회자들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중병은 "나는 내 교회만 죽어라 챙기겠다"며 바깥세상과 연를 끊고 사는 것을 무슨 거룩이나 청빈, 혹은 감투 따위는 전혀 관심없다는 겸양의 숨은 표현으로 무장하려는 목회자들이다.

교인들도 문제다. 

교계나 한인사회와 발을 끊고 반은 수도사처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우리 목사님'을 무슨 영성의 대가인양 평가하려는 평신도나 장로들의 편견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주 교회를 싸들고 산속으로 들어갈 참인가? 절간처럼? 

그렇다면 담쌓은 세상 밖으로 전도하러 나올 용기도 포기했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젊고 장래가 촉망된다하여 심지어 한국에서 까지 뽑고 뽑아 모셔온 큰 교회 젊은 목사님들이 설마 '카메라 샤이'병에 걸린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 보통 사람들에겐 파악이 곤란한 묘한 거만병에 걸려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니면 정말 연합사업이나 교계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며 행동할 줄 모르는 목회자적 깜량부족 때문인가?

오래전 고 임동선, 김계용, 조천일, 김의환 목사님 네 분을 일컬어 '남가주 목사 4인방'이라고 부르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이 명예로운 말은 아닐지라도 한인교계는 왜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가? 

그때는 그분들의 교회 일이 교계 일이요, 교계 일이 교회 일이었다. 

아니 교회 일이 한인사회 일이기도 했다. 

그 분들은 교회 문을 걸어 잠그기는 커녕 교회와 교단의 울타리를 넘어 발벗고 나서서 협력하고 지원하고 앞장서서 교계 연합사업에 힘썼다. 

그때가 한인교계의 전성기였던 이유는 바로 그 어른들의 열린 리더십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를 돕자하면 통크게 연합해서 도왔다. 

안된다 싶으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맞서곤 했다. 

한 예로 한인사회 최대 행사였던 '한국의 날 퍼레이드'를 주일에서 토요일로 옮겨 놓은 것도 그 어른들의 연합정신으로 가능해 진 역사가 있다.

나눔의 계절에 너무 냉랭해진 우리 한인교계의 우울한 모습이 어디 큰 교회 젊은 목회자들 때문만이겠는가? 

구세군 자선냄비가 줄어들고 사랑의 쌀이 중단된 것도, 나눔의 손길이 뜸해진 것도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건만 그걸 큰 교회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될 것이다.

그래도 나눔하면 큰 손이 열려야 가능해지고 풍성해진다고 생각하면 큰 교회로 축복받은 교회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 하는 얘기다.

좌우지간 이렇게 쓸쓸하고 야박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다보니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참으로 대단했던 사람들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페르샤 쪽에 살던 이교도들이 그 비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으면 혼자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국경과 인종의 담을 넘어 유대인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그걸 '공짜선물'로 내어 놓았으니. . .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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