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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중앙 아메리카하면 우리는 흔히 ‘마약소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아주 질이 나쁜 군사 독재자에 충성하는 앵벌이 나라. . . .그런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곳 LA에서 헤드렛 일을 하는 사람들, 예컨대 한인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접시닦이, 잔디 깎으러 다니는 가드너들, 홈디포 주변에 몰려 있는 일일 노동자들, 그런 이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대개 그쪽 사람들이다. 니카라과를 비롯하여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파나마, 코스타리카와 같은 나라들이다. 불법체류자도 많고 직업도 그렇고 하니까 우리는 한참 내리 깔고 그들을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지저분한 뒷마당처럼 느껴지는 그 중앙아메리카 한복판에 행복지수 세계 제1위 국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외가 아닌가? 어느 나라인가? 코스타리카란 나라다.
지난 17일 영국 민간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은 최근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HPI)를 산출한 결과 코스타리카가 총 64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럼 2위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천만의 말씀이다. 그럼 자랑스런 우리 조국 대한민국인가? 더더욱 아니다.
2위는 베트남이다. 그런데 그 2위를 빼고는 3위에 콜롬비아(59.8), 4위는 벨리즈(59.3), 5위는 엘살바도르(58.9)로 조사되었다. 모두 중미 국가들이다.
행복지수 상위권 10위 국가들은 모두 경제력하고는 한참 거리가 먼 베트남,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이란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반면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인 미국은 하위권인 105위를 차지했고 영국은 40위(47.9), 프랑스는 50위(46.5), 독일은 46위(47.2)로 나타난 것이다.
G7이나 G20라고 소리치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 모두가 4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니까 행복은 경제력과는 ‘참으로’ 무관하다는 사실을 통계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을 살펴봐도 그렇다. 베트남에 이어 방글라데시 11위(56.3), 인도네시아 14위(55.5), 태국 20위(53.5), 필리핀 24위(52.4), 인도 32위(50.9)이다.
그런데 일본은 45위(47.5)에 랭크되어 있고 한국은 43.8점으로 63위에 머물렀다.
‘소니’나 ‘토요타’의 나라 일본, 그리고 ‘삼성’이나 ‘현대’의 나라 한국이 가난뱅이 나라 세계 챔피언인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불행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최근 고도성장으로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중국이 종전 20위에서 무려 40계단이나 추락한 60위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중국은 시방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가 부도위기, 그리고 이태리와 포루투갈로 언제 번져갈지 모르는 국가 재정위기를 지긋이 내려다보면서 “그래, 너희들은 그동안 너무 잘 먹고 잘 살았어!”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박리다매 싸구려 장사로 경제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어찌하랴! 행복지수는 덩달아 추락하는 신세가 되고 있지 않은가?
왜 코스타리카는 행복 지수 1위가 되었을까? 조사기관의 객관적 잣대가 있었겠지만 나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 견해로는 몇가지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그 나라엔 군대가 없다. 군대를 폐지하여 평화의 가치를 지지하는 나라다.
정정이 불안하여 여행해도 괜찮을까 망설이는 그 중미 한복판에 군대 없는 나라라니! 그런데 사실이다. 그래서 ‘중미의 스위스’로 불린다. 이 나라의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대통령은 니카라과와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이 지역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8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산체스 대통령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현 라우라 친치야 대통령은 코스타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내가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놀란 것은 이 나라 대통령에겐 대통령 관저란게 없다는 것이었다.
백악관도 없고 청와대도 없다. 그냥 개인 아파트에 살면서 말단 공무원들처럼 집무실로 출퇴근 한다고 한다.
줄줄이 경호 차량도 따라 붙지 않고 관용차량 한 대를 타고 비서 한명 대동하는게 대통령 행차의 전부라고 했다. 지도자들의 청렴과 겸양이 나를 놀라게 했다.
환경에서도 청정사회지만 정치사회도 청정사회로 느껴지는 코스타리카.
그래서 잘 사는 나라들의 지도자들에게 늘 따라 붙는 권력형 비리나 부패란 말은 존재할 수 없는 나라처럼 보였다.
툭하면 쿠테타와 내전으로 어디 평화란 말이 자리 잡을 것 같지 않은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이 행복한 나라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결국 돈이나 권력으로 행복이 쟁취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시사해 주고 있다.
아리아스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자신과 타인에 대한 더 커다란 책임을 지게 됩니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더 많은 풍요를 누릴수록, 더 많은 행복을 누릴수록 이웃에 대한 더 커다란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지는 나라는 분명 행복한 나라요, 행복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NEF의 행복지수가 절대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여러 나라의 행복 지수를 통해 전달되는 교훈 하나는 행복이란 결코 돈으로 사들일 수 없다는 케케묵은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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