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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에 설치된 에그리프타 광고판. 이 지역에 에이즈에 감염된 동성애자가 얼마나 많은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남자 둘이 키스하는 모습, 옷을 벗은 채 껴안은 모습 등 동성애를 표현하는 포스터가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있는 곳이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카스트로 거리다.


암살당한 남성 동성애자 ‘하비 밀크’ 전 의원의 선거구였던 카스트로는 지금도 동성애 문화를 상징하는 동네로 손꼽힌다.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메카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선 매년 6월 퀴어 행사인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전 세계 동성애자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카스트로 둘러보기’ 같은 관광 상품도 있을 정도다.


카스트로 거리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각종 동성애 상징물들이 즐비하다.


동성애 문화의 상징인 6색 무지개 형상을 담은 상징물들이 눈에 가장 많이 띈다.
카스트로 거리의 가게 중 상당수는 동성애자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퀴어 문화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으로 ‘인권 캠페인’ 간판을 내건다.


미국 동성애자행동연대 등은 동성애 상징물을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인권 캠페인 동참 가게에서 쇼핑을 하라고 당부할 정도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에이즈와 관련된 의약품 광고가 거리 곳곳에 보인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억제제의 부작용 중 하나인 지방이상증(lipodystrophy)을 억제하는 의약품인 에그리프타(Egrifta) 광고도 버스 정류장에 등장했다.


동성애자의 수가 많지 않은 도시였다면 이런 광고는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을 생산하는 회사 입장에선 에이즈 유병률이 높은 남성 동성애자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에그리프타를 알리는 게 효과가 크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동성애자의 도시는 에이즈 감염자 역시 많은 도시임을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에그리프타의 성분명은 테사모렐린(tesamorelin)이다.


필자가 약학을 전공하던 시절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약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HIV 감염인의 복부 지방 감소’를 위한 의약품으로 승인됐다.
HIV 억제제, 이른바 에이즈 치료제의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는 돌출되고 단단한 뱃살과 같은 변화를 동반하는 지방이상증이다.


에그리프타는 에이즈 치료제를 투약받아 일어나는 부작용인 지방이상증을 치료하기 위한 또 다른 의약품인 것이다.


지방이상증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 즉 HIV 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정한 증상이라기보다는 에이즈 치료제를 먹지 않고 있는 HIV 감염인들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증상이다.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경우 그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에그리프타와 같은 의약품이 출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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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약사


실제로 제18회 국제에이즈회의에서 전 세계 12개국의 에이즈 감염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 생명을 위한 에이즈치료 국제조사(ATLIS·AIDS Treatment for Life International Survey 2010)’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 중 54%가 약물 부작용으로 체형 변화를 가장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얼굴이 심하게 붓거나 지방이 비대해져 혹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다.


HIV 보균자는 이러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해서 에이즈 치료제 복용을 거부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HIV 억제제는 정작용이 부작용보다 훨씬 크므로 감염자들은 반드시 에이즈 치료제를 잘 복용해야 한다.


지방이상증은 실제로 내장지방의 축적으로 일어나고 팔다리의 지방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체형으로 만든다.


미국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는 배가 나오고 팔다리가 가늘어진 동성애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배척당하곤 한다.


그런 체형 변화를 적극적으로 막고자 할 때 도움 되는 약물이 바로 에그리프타다.
에그리프타는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아 아토르바스타틴 등 고지혈증치료제로 대체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모든 남성 동성애자가 에이즈에 걸리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일본 할 것 없이 에이즈 확산 첫 단계에 놓여 있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에이즈 유병률은 남성 동성애자 그룹에서 가장 높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남성동성애자 100명 중 15명꼴로 에이즈 바이러스 유병률을 보인다.


그러므로 에그리프타가 남성 동성애자가 많이 다니는 카스트로 거리와 뉴욕 지하철 광고판에 등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성 동성애자와 에이즈 감염인이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한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에그리프타 생산회사인 테라테크사를 투자할 만한 유망회사로 추천했다.


실제로 테라테크사는 2015~16년 미국에서 눈에 띄는 에그리프타 판매 실적을 올렸고 2017년 162%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마케팅 지역이 카스트로였다.


그 거리에 즐비한 에그리프타 광고판의 모델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실제로 모두 에이즈 감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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