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하나님 믿는데 왜 울어? 부친상에 눈물 보인 사실혼 배우자 때린 60대 목사”란 헤드라인으로 기사가 떴다. 

한국에 있는 어느 신문 인터넷 판을 읽다가 내 눈을 고정시킨 제목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배우자를 때린 목사는 60대였고 결혼은 안했지만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인 부인을 때린 것이다. 

목사가 아내를 때렸다는 대목부터 분노를 유발한다.

그 이유가 더욱 가관이다. 

부인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화장터에서 눈물을 보였기 때문에 때렸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울어도 말려야 될 판에 아버지 죽음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책망하면서 손찌검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막가파 사람 입에 오르내리며 하나님의 이름이 굴욕을 당해도 되는 걸까? 

재판과정에서 들어난 걸 보니까 지속적으로 부인을 폭행했을 뿐 아니라 살인미수죄, 인질강요죄 등의 폭력 범죄로 14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전과 14범.

이런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를 주노라’고 공표했던 교단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탄생한 교단일까? 

전과기록도 살피지 않고 목사 안수를 주었다면 교단이고 나발이고 이걸 정상집단으로 봐야 하나?

그걸 따지기보단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울었다는 걸 폭력의 핑계로 삼았다는 점이 또 나를 화내게 했다. 

장례식장에선 서글퍼 울고 위로해 주는 게 마땅한 정서다. 

슬퍼하는 유족들을 앞에 놓고 지금 우리곁을 떠나 별세한 사람이 천국에 갔는데 왜 울고 불고 눈물을 흘리느냐고 아주 근엄하게 꾸짖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서 천국사정을 훤히 둘러보고 엊그제 귀환한 ‘천국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난다. 

무슨 천국보증수표를 지갑에 숨겨두고 다니는 척 거만을 떠는 모습이 꼴불견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아이고~ 아이고~” 옛날 한국의 운구행렬에서처럼 상여를 뒤따르며 베옷을 입고 곡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슬프기는 한데 천국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질타를 받을까봐 전혀 슬프지 않은 것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 모습도 망측하지 않은가?

교회서 하는 일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외치며 담임목사를 괴롭히던 장로님도 죽으면 천국환송예배, 세상에서 사기 치고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살다가도 교회 다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그 사람도 천국입성예배, 알콜중독, 도박중독으로 인생을 험하게 살던 사람도 죽기 전에 교회 드나들며 세례받고 죽었다면 그 사람도 천국환송예배다. 

교회가 마치 떨이로 천국 마켓팅에 열을 올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아예 천국에서 살 곳까지 마련해주겠다며 ‘천국입주예배’ 혹은 ‘천국신도시정착예배’란 말 따위가 더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아무리 천국환송예배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슬픈건 슬픈 것이다. 

다시 만날 그날이 약속되었다 할지언정 이별은 슬픈 것이다. 

그럼 울면 되는 것이다. 그게 장례식의 기본 모드다.

구약에서 야곱이 죽었을 때 아들 요셉이 “구프려 울며 입을 맞췄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 나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무덤에 장사되신 안식후 첫날 무덤 밖에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고 있었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직전이었으니 그 분이 다시 사신 걸 모르고 있을 때였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 당연한 슬픔의 표현을 천국 핑계 삼아 억제시키려는 행위가 마치 대단한 믿음을 과시하려는 수단으로 오용되어선 안될 일이다.

물론 기독교는 죽음을 절망과 끝으로 보지 않는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죽음을 놓고 성경은 더 나은 본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잔다’ ‘쉰다’ 혹은 ‘떠난다’란 표현을 쓰고 있다. 

당연히 영생과 천국을 전제한 말들이다.

그러나 당장 육신의 이별 때문에 슬퍼서 죽겠는데 그걸 꾹꾹 눌러 참고 천국소망을 갖고 방실 방실 웃어대라면 그건 억압이고 조작이다.  

영생을 믿고 다시 만날 소망을 갖고 살아가되 상을 당할 경우 슬픔에 겨워 우는 것을 탓하지는 말아야 한다.

더구나 하나님 믿는 사람 어쩌구 하면서 상을 당해 슬퍼하며 우는 사람들을 놓고 ‘천국입성부적격자’로 몰아붙여 자신의 부활신앙이 수준급이란 걸 과시하려는 사람들을 경계하자. 

그걸 이유로 부인을 두들겨 패는 목사도 있다고 하니 앙천대소(仰天大笑),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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