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교회력 강단색깔(Altar Color)에 따르면 부활절은 흰색이다. 

사순절은 보라색이다. 

교회력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기초로 해서 지키는 교회절기로서 크게 성탄절 사이클과 부활절 사이클로 나뉜다.

성탄절 사이클은 대강절로 시작하여 성탄절과 주현절로 이어지는 3개의 절기들이다. 

부활절 사이클은 사순절로 시작하여 부활절과 성령강림절로 이어지는 3개의 절기다.

각 사이클은 한 개의 준비 절기와 두 개의 축제 절기들로 구성되는데 대강절이 준비절기라면 성탄절과 주현절은 축제 절기, 사순절이 준비절기라면 부활절, 성령강림절은 축제절기에 속한다.

이런 게 뭐 중요하냐고 무시하는 교회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성도들에게 교육적으로 인지시키고 고백하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걸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우리는 이제 사순절로 시작된 부활절 사이클에서 축제절기인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을 앞두고 있다. 

그럼 부활절을 상징하는 색깔은 무엇일까? 흰색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절제하고 회개하는 절기이므로 보라색,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의 승리의 상징이자 불같은 성령을 뜻하는 빨강색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언제나 부활절 아침이면 흰옷을 입고 교회당에 가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활절의 색깔은 흰색으로 알고 자랐다.

오늘날도 부활절 예배당 앞에 장식하는 꽃은 흰 백합이다. 

초대교회에서도 부활절이 되면 세례식을 거행했는데 그때마다 흰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흰색은 거룩한 생활에 대한 외적 고백이자 영적 부활을 의미하는 색깔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내가 평생 부활절이 되면 교회당으로 가지고 가던 흰 백합화가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신 그 백합인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목회하셨던 어느 구석을 찾아봐도 그 백합화는 보이지 않았다. 

백합이 피는 계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부활절 백합화는 거기 없었다.

현지 성지가이드에게 들으니 

그런 백합화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백합화를 보라고 한 꽃은 바로 아네모네라는 꽃이었다. 

아이고, 신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착실하게 할 것이지 이런데서 무식의 밑창이 여지없이 드러나다니!!

특별히 갈멜산 주변 샤론평야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검붉은 아네모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백합화는 바로 그 꽃이었다.

그럼 부활절에 들고 가는 꽃은? 

오늘날 부활절 백합(Easter Lily)이라고 부르는 꽃은 ‘나팔나리꽃’이란 이름으로 원산지가 일본과 대만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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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일본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화훼관계자가 나팔나리를 미국에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했고 꽃집 이름을 ‘이스터 릴리’라고 붙였다고 한다. 

마침 부활절을 앞두고 만개하면서 미국에서는 널리 ‘부활절 백합’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산지는 동양인데 서양으로 건너와 부활절을 상징하는 꽃으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

그런데 백합화가 부활절의 꽃이 된 것은 그 모양새가 마치 나팔(Trumpet)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트럼펫? 그렇다. 하얀 백합은 꼭 나팔을 닮았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온 사방에 나팔을 불듯이 멀리 멀리 전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금년 부활절에 우리는 또 나팔나리꽃, ‘이스터 릴리’를 들고 예배당에 갈 것이다. 

흰색은 순결과 희망의 상징이다. 

순결하게 믿음을 지키며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자는 다짐이 필요하다.

백합꽃을 바라보며 마치 나팔을 불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 남은 생애를 살겠다는 다짐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 부활 신앙을 새롭게 하며 금년에도 우리 모두 해피 이스터!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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