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최근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여행하면서 ‘인신공양’이란 야만적인 제사 방법이 자꾸 내 머리를 감돌았다. 

아무리 원시시대라 할지라도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야? 

마음 한쪽에서 계속 맴도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유카탄 반도의 원주민이었던 마야인들에게 그런 제사 방법은 엄연하게 존재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노테(Cenote)란 동굴우물에 살아있는 사람, 특히 처녀나 어린아이를 빠트려 제물로 바쳐놓고는 그 몹쓸 우물을 ‘희생의 우물’, 혹은 ‘성스러운 우물’이라고 불렀다니 이것들이 미친거 아냐? 그렇게 화가 치밀기도 했다.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짐승과 달리 인격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어느 목적을 위해 함부로 죽임을 당해서는 안되는 존재다.

고대로부터 신의 노여움을 피하고 풍요를 누리기 위해 생명을 제물로 삼는 인신공양 시대가 있었다고는 들어 왔지만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보니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수백년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튼 그 우물에서 수영을 하고 물놀이를 해? 

유카탄 반도에 6천여 개의 세노테가 있는데 그중 몇 개는 유명한 놀이공원으로 세상에 소문이 나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니 참으로 웃기는 세상이다.

남미의 아즈텍 문화에서도 적군의 심장을 꺼내 제단에 바치는 야만 의식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잉카제국에서도 이처럼 사람잡아 제사를 지낸 흔적이 마추픽추 주변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을 받고 인당수 해역의 용왕님을 위해 몸을 던진 심청이도 ‘한국판 인신공양’ 사례가 아닌가?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이 인신공양제도는 골치 아픈 우상숭배였다. 

우선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고 보니 거기 암몬족속이 버티고 있었다. 요르단에 가면 수도 암만에서 북쪽을 향해 쳐다보시라! 그쪽이 바로 그 옛날 암몬 족속이 살던 땅이다. 

이들이 섬기고 있던 신이 바로 몰렉(Molech)이었다. ‘몰록’이라고도 한다. 얼굴은 황소 머리를 하고 몸뚱이는 사람의 모양을 한 청동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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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몰렉의 주특기는 산제물을 바치라는 거였다. 그것도 갓난아기. 

다산과 풍요를 주는 대신 아기를 산채로 바치라고 하자 청동우상에 불을 지핀 후 어린아이를 안겨주어 태워 죽이는 변태적인 인신공양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서서히 이걸 따라 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격노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20:1~5).

하나님은 이렇게 강도높은 포고령을 내리셨건만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 조차 성전 옆에 몰렉제단을 허락하였고(왕상11:5,7), 남유다의 아하스 왕(왕하 16:3), 므낫세 왕(왕하 21:6)은 몰렉 신에게 자신의 아들을 희생 제사로 바쳤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마야인들의 비정하고 야만적인 인신공양만 비판할 게 아니었다. 

암몬족속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이런 비인간적 인신공양을 일삼는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다니!!

몰렉에게 어린아이를 바칠 때 그 어미는 울어서도 안되고 슬픈 기색을 해서도 안된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감추기 위해 제사를 지낼 때는 신전에서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들겨 어미가 듣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잔인한 수법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아먹은 하나님의 초현실적 기적의 경험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몰렉 우상에게 몰려간 걸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망증 환자일까? 아니면 태생이 우상숭배 취향일까?

우리도 생각해 보자. 풍요와 안전, 돈과 성공, 가족의 행복과 자기성취와 같은 달콤한 출세아이템을 들이대면서 만약 오늘날의 몰렉이 나에게 접근해 온다고 가정해 보자.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내 믿음의 포지션을 강하고 굳건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내 소중한 것을 달라고 요구하는 우상과 기브앤테이크란 은밀한 거래를 성사시키며 복을 애원하듯 살고 있지는 않을까? 몰렉에게 인신공양을 하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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