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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중세시대에는 가톨릭교회가 라틴어 성경(Vulgate)을 경전으로 사용하면서 성경번역을 금지하였지만, 성경 번역은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말세가 이르기 전에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초대교회의 선교적 열정은 성경의 번역으로 이어졌다. 

성경의 번역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이 헬라어로 쓰인 예수에 관한 말씀을 이방인들에게도 전하고자 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주후 4세기경부터 구약과 신약성경을 아프리카의 콥틱어와 이디오피아어, 중동의 시리아어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중세 암흑기의 교회는 초기에 가졌던 선교열정에 의한 성경번역과 달리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376년에 교황 그레고리 11세(Pope Gregory XI)는 평신도들의 성경연구를 금지하였으며, 1408년 칙령을 통해 성경번역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존 위클리프(John Wyclif. 1320?-84)는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로서 처음으로 성경 전체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위클리프는 1378년 이후 교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면서 성경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으며, 성경을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대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유럽대륙에 르네상스와 함께 자국어로의 성경번역 붐이 일어나면서 독일의 루터에 영향을 받은 윌리암 틴데일(Wlliam Tyndale, 1494-1536년)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쟁기를 가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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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루터(왼쪽)와 윌리암 틴데일(오른쪽).

1526년에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한 틴데일은 구약성서를 번역하던 중 헨리 8세(Henry VIII)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어 1536년 10월 6일에 교살된 후 불태워졌다. 

그는 운명하면서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하였다.

그의 유언은 75년 뒤 영국왕 제임스 1세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제임스 1세는 종교적 안정을 위해 “하나의 통일된 영어성경”을 발행하기로 하고 45명의 학자들에게 구약과 신약성경 및 외경을 번역을 의뢰하여 1611년에 제임스 왕 역(King James Version)출판하였으며, 1887년 캔터베리(Canterbury)에서 개최된 영국 국교회 주교회의에서 제임스 왕 역의 개정작업을 결정할 때까지 250년 이상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인정받았다. 

제임스 왕역이 출판되던 해에 셰익스피어의 “겨울밤 이야기”(the Winter's Tale)과 “태풍”(The Tempest)도 출판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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