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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교회 손경일 담임목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바로 떠오르는 그림은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일 것입니다. 

워낙 두 그림이 명작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기억합니다.

한편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작품들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수태고지'라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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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고민을 던져 왔습니다. 다빈치의 그림으로 보기에  너무 이상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원근법 즉 멀리 있는 사물은 멀리 보이게 가까이 있는 사물은 가까이 보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해 그리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원근법을 너무도 잘 알던 다빈치가 그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상하게 그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리아의 오른팔이 왼팔에 비해 너무 길게 그려졌고, 또한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당시 천사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 뚱뚱하게 그려져 살찐 비둘기라고 조롱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오해했던 이유는 "그림은 정면에서 봐야한다" 라는 당시의 관점에서 만 그 그림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수태고지'라는 그림은 당시 성당의 앞쪽 위에 걸려 있어야 했습니다. 

앞에 강단이 있어서 이 그림을 보려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올려봐야만 했습니다. 

그 위치에서 '수태고지' 그림을 보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즉 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림은 정면에서 봐야한다는 관점으로만 보았기에 다빈치의 작품은 무려 400년간 이상한 그림으로 취급 받았던 것입니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삶의 선택이 달라집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는 우리의 관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의 관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장1-3절>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게 누구의 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무섭게  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것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이 바로 관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관점을 따르느냐에 따라 그 결과 또한 당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과 세상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은 그래서 다릅니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나요?  

내가 세상에서 경험한 관점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장2a>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그분의 시선으로 즉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같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다빈치의 수태고지라는 그림을 보아야 할 관점에서 볼 때 그가 그린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이게 되듯이, 예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이 허락하신 진정한 은혜와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팔 한 쪽이 길고 못나고 불행한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또한 세상의 관점으로 보아 다른 이의 인생을 내 맘대로 비웃고 있다면 이제 세상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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