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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배 목사

6장. 스콜라 신학의 영향...하

 

●이것이 옳지 않은가?

 

철학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삼위일체론을 가르치려면,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을 읽으며 학생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만나 교제하도록 인도해야 하지 않은가? 

인간론을 가르친다면,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에게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선포하여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죄의 습관들을 끊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실천신학을 가르치려면, 교회 행정을 넘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목회하는 법을 가르치라. 

설교학을 가르치려면, 설교자 자신이 성경을 읽으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설교 중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를 맛보게 하는 그런 설교자를 양육해내라.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학교수들은 학생들을 인도하기는커녕 자신들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야다의 삶을 산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간접 지식을 옹호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얻는 직접 지식을 천박하게 여기며 기피한다.

오늘날 신학교들이 가르치는 신학은 하나님의 통로, 곧 성령의 통로로 주어진 산물이 아니다. 

인간의 통로, 곧 헬라 철학과 논리학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철학 같은 신학”이다. 

중세 스콜라 신학이 만들어낸 이 철학화된 신학은 오늘날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목표부터 달라져야 한다.

 

철학화된 기독론이 아니라 진정한 기독론을 가르치려면, 목표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리스도에 관한 간접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한 것처럼, 중매하듯이 학생들을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만나 영원한 관계를 맺고 함께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기독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장 1절

양과 목자로 비유하면, 기독론의 목표는 성경과 성령과 기도를 통해 아직 거듭나지 못한 학생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양으로 거듭나게 하고, 거듭난 학생들은 목자이신 예수님이 그들을 알듯이 그들도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양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장 27절

여기서도 예수님이 사용하신 단어는 사고를 통해 아는 오이다(head knowledge)가 아니라, 교제를 통해 알게 되는 기노스코(relational knowledge)이다. 

그러므로 기독론은 학생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간접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양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3장에서 거론한 것처럼, 간접 지식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간접 지식이 내 안에 먼저 진지를 구축하면, 이것이 직접 지식을 몰아내는 저주가 된다는 말이다.

진주나 다이아몬드, 권력, 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돈 자체가 저주이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함이 내 안에 먼저 자리를 잡으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 내 안에 하나님 사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저주가 된다는 말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그러므로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계속 꾸역꾸역 간접 지식을 먹이지 말고, 오히려 간접 지식이 굳어지기 전에,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야다의 직접 지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학생들을 이끌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간접 지식에 앞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며 얻는 직접 지식이 먼저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교인들이 천국 들어가는 문을 가로막는 “바리새인 목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3, 15절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며 야다의 직접 지식을 누리는 부모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전하는 지식은 사람의 통로로 전하는 간접 지식에 불과하다. 

자녀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먼저 간접 지식에 사로잡히면, 여러분은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 교육에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우리 자녀들을 찾아오신다. 자녀들과 함께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함께 찬송과 예배를 드리라. 

그래서 자녀들이 간접 지식의 포로가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통로로 하나님을 직접 아는 야다의 삶에 들어가도록 도우라. 

그리하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믿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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