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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섹스피어가 사망 400주기를 맞았다. 


1564년에 태어나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알라일이란 역사학자가 “섹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엄살을 떨었다고 하니 그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이지 파악이 된다. 


‘햄릿’에 나오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말은 성경말씀 만큼 유명하다. 


그래서 섹스피어는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있는 인물인 셈이다.영국은 그의 사망 400주기를 맞아 3종의 기념주화를 발행했다고 한다.  주화에는 비극을 상징하는 ''해골'', 희극을 나타내는 ''광대 모자'', 역사극을 상징하는 ''왕관과 칼''의 형상이 각각 새겨졌다고 한다. 


섹스피어는 총 37편의 작품을 남겼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으로 일컬어지는 ''4대 비극''과 함께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 여름밤의 꿈''으로 꼽히는 ''5대 희극''은 특히 유명하다.


그의 성공은 역사적 환경과도 관계가 깊다.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나 잘못하다간 생모처럼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하며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 통치시대 인물이다. 


캐톨릭을 외면하고 영국교회를 굳게 세워가려던 엘리자베스는 종교극을 일체 금지시켰다. 통속적인 세상극이 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섹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이 당연히 갈채를 받을 수밖에. 


그 시대 런던 사람들은 연극을 보는 게 낙이었다고 한다. 


TV가 없는 세상이었으니 사람들은 극장으로 몰렸을 것이다. 지금 TV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에딘버러나 런던, 영국 곳곳에는 아직도 섹스피어 전용극장이 즐비한 것을 보면 그의 위력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것 같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영국과 스코틀랜드 연합왕국의 왕좌에 오른 제임스 1세의 이름으로 반포된 ‘킹 제임스’ 성경은 대개 1만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섹스피어 작품에는 무려 1만5천 내지 2만개의 영어가 등장한다고 한다.  섹스피어가 만들어낸 영어가 그렇게 많다는 말이다. 섹스피어 때문에 영어가 가장 부흥한 시대였다.

그 섹스피어가 사실은 기초학력만 있을 뿐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수많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식하고 풍부한 지식은 그의 실제 학력수준으로는 절대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섹스피어와 극작가로서 명성을 날린 섹스피어는 전혀 다른 인물이란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엘리자베스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섹스피어의 실제인물이란 주장이 가장 설득력있게 전해지고 있다. 


베이컨은 처녀 엘리자베스가 몰래 낳은 아들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섹스피어는 없다’, ‘섹스피어는 섹스피어가 아니다’란 책들이 출간되었다. ‘섹스피어 미스테리’는 그래서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유명한 섹스피어가 죽어서 묻힌 곳은 그가 태어난 스트랫포드란 고향의 홀리 트리니티 교회당이다. 이곳에서 섹스피어는 세례도 받았다. 


그런데 영국의 과학자들이 레이다 이미지로 무덤을 연구해 본 결과 벌써 200년 전에 그의 두개골은 누가 훔쳐가서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주 타임지에 나온 얘기다.얼마나 유명했으면 무덤에서 두개골을 훔쳐가는 일까지 벌어졌을까? 


그런데 이런 시체 일부에 대한 도둑질은 인류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산타클로스’로 널리 알려진 세인트 니콜라스의 시체는 어부들에 의해 현재의 터키에서 도둑을 맞아 이탈리아 바리(Bari)로 옮겨지기도 했고, 지동설을 주장하다 처형되는 마당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갈릴레오는 사후 95년 만에 그의 무덤에서 세 개의 손가락과 이빨이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 의해 도둑맞았다고 한다. 


현재는 그 손가락들이 다시 모아져서 플로렌스 박물관에 전시중이란다. 


음악가 조셉 하이든이 사망했을 때 그를 따르던 자들이 무덤을 파는 이에게 뇌물을 주고 두개골을 훔쳐갔다고 한다. 음악천재의 두개골에서 무엇을 얻을까 해서 . . . 결국 1954년이 되어 두개골은 그의 무덤으로 되돌아왔다. 


천재과학자 앨버트 아인쉬타인도 마찬가지다. 


1955년 그가 사망했을 때 본인은 화장하라고 유언을 남겼건만 담당의사는 그의 눈알을 아인쉬타인의 안과 의사에게 넘겨주었단다. 


그건 지금까지도 세이프 디파짓 박스에 소중하게 보관중이라고 한다. 유명하다보면 참 별일도 많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셨으니 천만다행이다.  아마 부활하지 않으시고 무덤 속에 갇히셨다면 안식 후 첫날부터 도둑들이 무덤근처에 들끓었을 것이다.


나 같은 존재는 죽어서 내 뼈의 일부를 누가 도둑질 해가기는커녕 가족들에게 짐만 될 것이다.그래서 죽어서까지 민망하게 땅을 차지하고 누워 있을 바에야 오히려 화장이 생태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내 고향 서산 종중산에는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나신 큰 형님이 형님 묘 옆에 나의 가묘를 만들어 놓고 가셨다. 


아버지처럼 날 키워주신 형님의 유지를 거슬릴 수도 없고 . . 내 시체 운송비는 또 얼마나 비쌀꼬?

좌우지간 섹스피어가 아니어서 죽어서 뼈도둑 맞을 일이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완전무명 인생, 따져보면 그것도 행복으로 간주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섹스피어 때문에 엉겁결에 찾아든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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