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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산타바바라 아일라 비스타에 발생한 무차별 총격사건으로 6명이 또 억울하게 죽어갔다. 


모두 대학생들이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의 총격을 받고 불꽃처럼 사라져야 이 땅에 총성이 멎을까?


2012년 덴버 오로라 지역 극장에서 데이빗 홈즈란 24살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죽고 58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전국이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같은 해 커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20명을 포함 28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범인은 20살 난 아담 랜자라는 청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총기 규제론자인 뉴욕 불름버그 시장까지 가세해서 강력한 총기규제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 때 뿐이었다. 2007년엔 한인 조승희가 버지니아텍에서 32명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발생했다. 


이런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 규제 여론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다시 썰물처럼 관심 밖으로 쑥 빠져 나가는 게 미국의 간사한 여론이었다.


미국의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은 미국에서 군인을 제외한 민간인이 소지한 총기를 최소한 3억정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구 보다 총기가 많은 나라다. 


그래서 미국의 총기 사망률은 2011년 10만 명 당 10.3명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독일,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들과 비교해서 20배나 높은 수치다. 


이런 판국인데도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총기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말고 누가 있을까?


그런데도 총기 규제란 쉬운 싸움은 커녕 계란으로 바위 깨부수기나 다름없다. 


미국의 돈 많고 힘 센 총기업자들이나 전미총기협회(NRA)는 "총은 총으로 막아야 된다"고 억지를 부리며 여론의 역풍을 부채질하는 공룡으로 버텨왔다.


총기 규제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시카고의 경우로 살펴보자. 

현재 시장은 람 이매뉴엘이다.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고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으니 대통령의 그림자 같은 존재 아닌가?


그가 시카고 시장선거에 나서 당선되자 시카고를 미 전역에서 총기 없는 모범도시, 총기 청정도시를 선언하고 강력한 총기 규제를 시행에 옮겼다. 


총기상 설립, 총기 거래를 법으로 전면 금지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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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미국에서 초강력 총기 규제가 시행되긴 했으나 이를 어쩌랴! 

연방 법원으로부터 금년 초 철퇴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수정헌법 제2조를 들어 시카고의 시 조례는 위헌이란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법원은 금년 7월까지 총기규제를 완화하는 시조례를 만들라고 명령하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매뉴엘 시장조차도 새로운 조례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총기 규제 앞에 놓인 만리장성 같은 현실의 벽이다.


그럼 총기규제에 대한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목숨을 잃어야 미국이란 나라가 총기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나서게 될까?


그러나 민주주의의 저력은 민초에 있지 않은가? 


그 민초의 저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례가 바로 ‘음주운전을 반대하는 어머니회(MADD, Mothers Against Drunk Driving)’이다. 


13살 난 딸이 음주 운전자에 의해 캘리포니아 페어옥스에서 사망하자 범인에게 내려진 법원의 형벌이 너무 약하다는데 충격을 받은 어머니 캔디 라이트너(Candy Lightner)는 딸의 장례식이 끝난 나흘 후부터 이 나라에서 음주운전을 추방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딸이 사망한 1980년에 MADD를 발족시켰고 전국을 발품삼아 뛰어 다니며 내 딸처럼 음주 운전자에 죽어가는 또 다른 딸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어머니들의 가슴에 호소문을 날렸다.


한 평범했던 어머니 라이트너의 줄기찬 노력으로 결국 레이건 대통령은 1982년 음주 및 마약운전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미 전국에서 400개의 음주운전 규제법이 시행되는 기적같은 결과를 불러오게 했다. 


지금 서슬이 시퍼렇게 음주운전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은 불행하게 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포기할 수 없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아일라 비스타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아버지와 가해자 아버지가 서로 만나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사건의 피해자 부친 리처드 마르티네즈는 가해자의 부친 피터 로저와 비공개로 만났고 이들은 둘 다 “우리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다른 가족들이 겪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며 미국의 총기 규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영화 ‘헝거 게임’의 조감독으로 미국의 문화계 리더로 알려지고 있다.


총 때문에 자식을 잃은 슬픔, 총 때문에 가족의 명예까지 총질을 당한 불명예를 견뎌내며 가해자와 피해자 아버지가 총기 규제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니 불행 중 다행스런 소식이 아닌가? 


총기에 대한 이들의 정의로운 분노가 어쩌면 산타아나 강풍을 타고 불길이 번지듯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역의 정치인들을 움직이고 워싱턴 DC의 상하원을 깜짝 놀라게 하면서 총기규제 지지 물결이 마침내 워싱턴 몰까지 밀려갈 수 있다면, 그래서 수정헌법까지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대한 민초들의 반란이 시작될 수 있다면 총으로 불쌍하게 쓰러진 가련한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랴! 


마침내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리는 불가능한 가능의 총기규제 역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MADD가 음주 운전의 역사를 바꾼 것처럼 아일라 비스타의 비극이 총기로 망할 것 같은 이 나라를 구제하는 희망의 구명보트가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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