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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북한 땅에 남겨진 남편과 딸,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못이룬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위로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카페에서 만난 주순영(경기도 광주 성령교회) 선교사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는 최근 북한이 우리 사회에 도발과 위협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쇼”라고 단언했다.


“남한에 내려온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큰 복이라고 여깁니다.


여전히 북한의 핵 공갈과 전쟁 위협을 통한 세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체제에 대한 선전들을 보면 속아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북한에서 미모와 지성을 인정받은 ‘1호 공훈배우’였던 그는 선택받은 신분이었다.


김일성의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역할로 당과 북한 인민에게 국모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180도 달라졌다. ‘고난의 행군’ 이후 외화벌이에 나서는 신세가 됐다.


중국 출장길에서 만난 남한 목회자들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남한에서 오신 분들이 성경책을 선물하고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초보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이 싹튼 것이지만, 그때 그 목사님의 말이 제겐 큰 도전이 됐고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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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탈북하기 전의 북한에서의 주순영 공훈배우

 


그는 2000년 탈북해 3년의 중국 도피생활 동안 두 차례 압송을 경험했지만 결국 2003년 1월,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탈북기간 동안 몽골과 중국에서 갖은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한국 땅을 밟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건너 온 남한에서의 삶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북한 음식 식당 3개를 운영하다 폐쇄했고, 돈을 벌겠다고 장삿속이 뻔한 일에 뛰어들었다가 상처만 입었다.


삶이 버거워 3번씩이나 한강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주위 분들의 격려와 인도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총신총회신학대학원 등에서 공부하며 부족했던 믿음을 추스르고 신실한 신앙을 갖게 됐다.


그는 아침마다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


가진 달란트를 활용해 북한 주민을 위해 힘닿는 대로 도우며 살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탈북여성 10여명으로 구성된 휘파람찬양예술단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찬양집회를 주관하고 있다.


북한에 매년 두 차례 쌀과 우유, 옥수수 등을 중국을 통해 보낸다. 자본주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에게 직장을 알선하고 인생 및 신앙상담을 해주는 것도 그의 사역이다.


남북한 성도들이 다함께 찬양할 수 있는 ‘문화예술 대성전’을 건립하는 것이 그의 비전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딱한 상황을 보면서 남한에 온 것은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또 제게 사명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한 손에는 ‘마이크’를,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담대하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고 싶습니다.”


그는 더 많은 교회들을 찾아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증거하고 싶어 했다(010-4089-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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