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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쉴 틈을 만드신 분이다.
그래서 빈틈없는 사람보다 쉴 틈을 만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다.


안식은 하나님의 아이디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다.


안식은 일을 잠시 그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절은 안식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


또한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다.
안식은 마침과 그침이다. 마침과 그침은 멈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마침과 그침과 멈춤에 있다.
멈춤은 빈틈을 만들어 안식하도록 도와준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그칠 줄 모르고,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차와 같다. 쉼 없이 전진하고, 성공하고, 이기는 것은 능력이다. 반면에 뒤로 한걸음 물러서고, 성공하는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며, 이길 수 있어도 화평을 위해 저주는 것은 성품이다.


이 세상을 파괴시키는 사람들은 빠른 사람들이다. 느린 사람이, 심지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파괴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은 속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라고 유혹했다.


엄청난 속도다.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절 한번만 하면 한 순간에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마귀는 과정을 무시하고, 질서를 무시한 채 속도만 강조한다.
마귀는 빠른 성공, 빠른 부요, 빠른 쾌락을 만들어냈다.


마귀가 만든 문화 중에 하나가 가속화의 문화다.
가속화의 현상은 창조의 질서와 조화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속이 만들어낸 것이 피곤사회다.


하나님의 창조의 조화 속에는 느림이 있다.


빈틈이 있다. 공간이 있다. 여백이 있다. 기다림이 있다. 동경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기다림의 미학을 빼앗아 가버렸다.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기다림의 맛과 동경의 아름다움을 상실케 만들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빈틈없는 사람은 안식을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이 빈틈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빈틈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쉴 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빈틈이 없어 다른 사람의 숨통을 끊어 놓는 사람이 아니라 쉴 틈을 만들어 안식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쉼을 불안해하거나, 쉼을 정죄하거나,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영혼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안식은 쉬는 것 이상이다.


안식은 누림이다.
하나님은 안식을 통해 누리셨다.
누림은 좋아함이요, 행복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바라보시며 심히 좋아하셨다.
행복해 하셨다.


소유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누림은 음미다.


음식을 누리는 사람은 음식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맛보아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함은 미각을 상실케 만든다.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늦출 필요가 있다.
안식은 일과 쉼의 리듬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은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음악, 춤, 놀이에는 리듬이 있다. 리듬이 즐거움을 준다.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쉼이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쉼표다.


쉼표가 없는 음악은 없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쉼표다.


일을 마친 후에는 안식해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던 날들 사이에 도 안식하셨다.


창조의 이야기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그 패턴 중에 하나는 “저녁이 되고 아침 되니”라는 패턴이다.


하나님은 저녁과 아침 사이에서 쉬셨다.
일하신 후에 쉬신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다.


지치지 않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쉼을 선택하셨다.


창조의 일이 끝날 때마다 쉬셨던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치신 후에 안식하셨다. 소 안식과 함께 대 안식을 누렸던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심장은 쉬지 않고 일하는 장기로 알려졌다
심장은 엄청난 양의 혈액을 온몸의 구석구석에 보내기 위해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월터 B. 캐논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장은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축할 때마다 일정한 휴식기간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심장은 24시간 중에 겨우 9시간 일하며, 15시간 정도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장이 오랫동안 일할 수가 있는 것 같다.


잠시가 아니라 오랫동안 일을 하려면 쉴 줄 알아야 한다.
끝까지 달려가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 쉴 줄 알아야 한다.


안식은 맡김이다.
안식은 우리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길 때 가능하다.
안식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다.


우리가 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신뢰다.
참된 휴식은 맡김에 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맡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휴식이 될 수 없다.
우리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 평화롭다.


영혼은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을 좋아한다.
빠른 것보다 느림을 즐긴다.


이번 여름에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도록 하라.
일만 멈추지 말라.


염려도 멈추고, 죄짓는 것도 멈추고, 싸움도 멈추고, 남을 정죄하는 것도 멈추라.
비판하는 것도 멈추라.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에 안식이 깃들 수는 없다.
안식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안식은 영혼을 소생시키기 위한 거룩한 투자다.
오래 엎드린 새가 높게 나는 것처럼, 안식할 줄 아는 사람은 비상하는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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