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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일가의 추징금 전액 납부 소식을 5·18 광주민주항쟁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대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광주 민주화운동 생존자들의 정신적 치료를 위해 설립된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조희현(42) 치유팀장을 지난 13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추징금 납부를 5·18 생존자 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속시원하다는 분들도 계시고, 오히려 불쌍하다는 분도 있으세요. 하지만 미흡하다, 자식을 앞세우지 말고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얘기들도 많습니다.”

-생존자들은 이제 용서할 수 있으실까요.
“용서라는 게 참 어려운 부분이에요. 저도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께 용서 받은 사람이니 용서하는 것이 맞다고 믿지만 인간적으로는 쉽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마음으로 용서가 되지 않는데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생존자들에게는 더 큰 정신적인 상처가 되고 나중에는 비신앙인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집니다.”

-어떻게 심각해지나요.
“사람이 감정을 오랫동안 억압하면 신체로 표출됩니다. 암이나 심장병도 생기고요.”
한 조사에 따르면 5·18 유공자들의 95%가 ‘외상후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5·18 당시 북한군 침투설 같은 얘기가 나오면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아파온다.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33년이 지났습니다. 
당사자들은 감옥까지 갔다 오고, 이제 추징금도 내기로 했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사회적으로 합의해 이뤄진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돼 버렸어요. 사면까지 포함해서요. 사실은 그때 용서와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죠. 무엇보다 가해자들이 당시 사건의 진상을 고백하고 사과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지금도 텔레비전에 전두환이 등장하면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치유를 위해 지난해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 같은 노력이 있었지만, 한·중·일에서는 이곳이 최초다.

-여기 오면 치유를 해줍니까.
“우리가 어떻게 인간 영혼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해결해줄 수 있겠어요. 여기서 하는 것은 그분이 고통 받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들어주는 겁니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죽을 사람이 살 수도 있거든요.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거기까지이고요, 나머지는 교회를 비롯해 종교가 해야 한다고 봐요.”

-상처 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엘리야가 악한 왕 아합에 맞서 싸우다 왕비 이세벨에게 쫓겨 도망갔을 때, 하나님은 가장 먼저 천사를 보내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왕상 19:5∼7). 교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사람이 요즘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분들이 교회를 찾아오기도 하는데, 뭘 가르치고 설교하기 전에 먼저 위로하고 힘을 줘야 합니다.”

-5·18의 아픔을 푸는 성경적인 해법이 있을까요.
“야고보서 말씀(약 5:16)처럼 고백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목하라고 했잖아요(마 5:23∼25). 5·18의 가해자들이 속으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직접 말로 이런 부분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게 용서와 화해를 위해선 정말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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