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산타는요.JPG


어린 소녀는 먹을 수가 없다. 물 한 모금에도 구토하는 희귀병을 앓는다.
김에 밥 한 숟가락 싸서 먹는 게 소원이다.


소녀는 링거 7∼8개를 몸에 꽂고 있다.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게 소원이다. 여행 가는 게 꿈이다.


미국 조지아주 덜루스에 사는 한 청년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이 소녀를 위해 기도한다.
성탄절을 앞두고 청년은 소녀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


“옆얼굴 보이게 해 주세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교회 예배당.


어린이병원 ‘동7병동’에 입원 중인 전예지(10)양과 어머니 장혜란(37)씨는 17일 오전 아이패드 화면에 나타난 임철환(28)씨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보고 싶었어요. 근데 삼촌, 아빠랑 많이 닮았네요.”


예지가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어머니도 맞장구쳤다.
모녀는 임씨를 난생 처음 봤지만 ‘삼촌’이라고 불렀다.


임씨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 불렀다.
‘하나님 제겐 참 두려운 게 많습니다∼’


 예지가 좋아하는 ‘너는 축복의 씨앗’도 같이 신나게 불렀다. 청년은 예지와 일상적인 대화를 한참 나눴다.


“뭘 해보고 싶니?” “삼촌이랑 나중에 사진 찍으러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걷는 연습 열심히 해요.” “내가 한국 갈 때는 예지가 다 나아 있을 거야.”


임씨는 예지에게 말씀(마 6:33)을 읽게 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세 사람은 미국과 한국에서 화상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지는 화상 통화 중 작은 목소리로 아이패드 위치와 각도 조정을 요청했다.


“제 얼굴 호빵 같아요. 좀 멀리 떨어져 주세요. 얼굴 측면이 보이게 해주세요.”
목소리가 들렸는지 삼촌이 웃었다.


예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어머니는 “어제는 이것저것 얘기한다더니 말을 못하네? 삼촌 보러 가려고 용돈 모은다는 얘기도 하지”라며 놀렸다.


예지가 몸을 살짝 비틀었다. 쑥스러운 듯했다.


면역성 질환 추가, 진단명 15가지


모녀가 임씨를 알게 된 건 한 달도 안됐다.
“면역성 질환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예지양의 어머니는 지난달 말 주치의 면담 후 울었다.


예지의 진단명은 이미 14가지였다.


크론병, 회장염, 패혈증, 골다공증, 난소양성종양….


장씨는 “예지가 3년 넘게 병원에서 생활했는데 또 다른 병명이 나오다니요. 분노가 치밀었어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라고 했다.


예지는 ‘먹을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
수액으로만 몸에 필요한 열량과 영양을 공급받는다.


뚜렷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다.


보여주고 싶고, 먹이고 싶고

임씨는 지난 8월 토기장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소책자 ‘편지’에 나온 예지 사연을 우연히 보고 기도와 후원을 문의하게 됐다.


임씨는 토기장이를 통해 예지의 소식과 사진을 받았다.


그는 ‘울컥하네요. 예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아이 같아요. 제가 작아지는 느낌입니다’라고 토기장이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고2 때 이민 간 그는 부모와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요리사다.


“삼촌이 예지가 좋아하는 요리, 사진 찍기, 노래 부르기를 모두 좋아한다고 해서 신기했어요.”
어머니 말이다.


임씨는 애틀랜타 노크로스한인교회 찬양팀 가수이자 셀 리더다.


임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제가 저희 교회에 예지와 가족 기도를 많이 요청해요. 예쁜 걸 보면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예지 생각이 나요. 예지가 제 친딸처럼 느껴져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예지 사진 보면서 웃어요.


카톡 프로필 사진도 예지랑 지우예요.” ‘총각’ 임씨의 얘기다. 그는 모녀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대화한다.


예지는 “삼촌이랑 자주 카톡 대화를 해서 심심하지 않다”며 웃었다.


예지의 휴대전화 사진 폴더에는 거리 악사의 캐럴 연주, 벤치가 놓인 공원, 붉은 석양 등 미국 풍경이 가득하다. 삼촌이 보낸 사진들이다.


임씨는 예지의 ‘친구’가 됐고 예지 가족의 삼촌이 됐다.


그는 예지가 가장 좋아하는 CCM ‘너는 축복의 씨앗’ 기타 반주를 녹음해 보냈다.
임씨는 얼마 전 카톡으로 예지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삼촌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삼촌이랑 사진 찍으러 가고, 삼촌이랑 뮤지컬 보러 가고 싶어요.”

어머니 ‘팔 아래 날개 숨긴 거 아니죠?’


예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삼촌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걷기 운동을 한다.
어머니는 마음의 평안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임씨의 삶 역시 변화하고 있다.


어머니는 삼촌에게 ‘팔 아래 날개 숨기신 거 아닌가요? 저희 가족이 가장 힘든 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카톡을 보냈다.


예지는 삼촌 덕분에 가장 힘든 때 가장 환하게 웃었다.
예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렇게 도착했다.

인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