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예수'의 한완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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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예수'의 저자 한완상 박사가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아한 패배를 통해서 모두 함께 승리하는 '상승(相勝)과 함께 사는 상생(相生)을 이뤄 나가자"고 말하고 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만연하는 세상, 적자(適者)들의 횡포가 극심해지는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셨다.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이제 슬피 우는 자가 복이 있나니….”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라.” “우아하게 지고, 멋지게 죽는 자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리라.” “꼴찌가 첫째가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 펼쳐 나가라.”
그는 ‘바보 같은’ 말만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 바보 원리를 실천하셨다. 살아 있는 동안 한번도 꼼수를 부리지 않으셨다.
광야에서 제시된 사탄의 달콤한 시험을 우직한 바보 정신으로 이기셨다. 그리고 직접 십자가 제단으로 우아하게 나아가셨다. 적자생존의 시대, 모두가 승리하려는 세태에서 그는 ‘우아한 패배’를 선택한 것이다.
‘민중과 지식인’ ‘예수 없는 예수 교회’ 등의 저자인 한완상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바보스러움에 주목했다. 서울대 교수,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한 박사는 그가 사역하고 있는 새길교회의 설교를 묶은 ‘바보 예수’(삼인)를 통해 이 땅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수 따르미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한 박사를 만났다.
그는 바보를 ‘바로 보는 사람’ ‘바로 보살펴 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바보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보통사람들, 특히 영악한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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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일상의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보기에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바보는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바로 보살펴주는 사람입니다. 성직자들은 억울하게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피해갔지만 ‘잡종 인간’으로 치부됐던 사마리아인은 진정한 바보였습니다. 그만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을 바로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크리스천들을 ‘예수 따르미’로 지칭한다. 예수를 따르며, 그대로 살려는 작정을 한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한 박사는 예수 따르미들은 예수의 바보스러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보스러운 말씀, 바보 같은 결단과 삶을 이 시대 속에서 새롭게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보스러움에서 새로운 힘, 새로운 은혜를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박사에 따르면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바보 예수’의 이야기들이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팔이 밖으로 굽기를 요구하셨다. 배타적 유대민족의식에 충만했던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는 고향에서 배척받아야만 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는 꼴찌에 대한 진한 사랑 표현이 나타납니다. 탕자 같은 존재, 경멸받았던 이방인, 여성, 죄로 인해 중병에 시달리는 죄인들, 지체장애자로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지극한 배려와 사랑은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기득권층에게는 바보스런 편애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심각한 바보다운 선택은 스스로 죽으러 가는 메시아임을 선포한 것으로 보았다.
“원래 메시아란 칭호는 당당하게 승리하는 지도자, 용기 있게 해방시키는 지도자, 신적 권위로 세상을 통치하는 지도자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패배하는 메시아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지도자 역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압승자 메시아로 착각하는 제자들에게 ‘우아한 패배’를 역설하셨습니다.”
한 박사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본질이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복음의 가치는 ‘바보 메시아’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빛나게 되는 가치란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산 위에서 바보처럼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는 몸소 그 사랑을 실천하시어 바보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진수입니다. 지금 만신창이가 된 한국 기독교에 필요한 가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박사는 우리 모두가 우아한 패배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두가 승리하려 한다면 우리 안의 악이 더욱 활개 치게 된다. 그야말로 발악(發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아한 패배를 선택하려는 그 순간, 우리 안의 숨겨진 선이 나온다.
발악이 아니라 발선(發善)하게 되는 것이며 그때 평화가 깃든다. 그는 우아한 패배에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함께 이기는 상승(相勝)과 함께 사는 상생(相生)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바보의 힘’ ‘보시니 참 아팠더라’ ‘역설의 행복’ ‘참 바보가 되는 교회’ 등 4부로 이뤄진 책은 밀도가 있다.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며 읽다보면 깊은 깨달음이 온다.
한국 교회로선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한평생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치료하는 예수 같은 의사’ 곧 소셜 닥터(Social Doctor)가 되기를 소망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아온 한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귀한 배움의 기회를 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그 깊은 동고심(同苦心)으로 북한 동포를 보살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쓰리더라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니까 살아 있는 크리스천이다. 아파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를 말한다. “화려한 흰 군마를 타고 승리주의자로 군림하는 보무당당한 제국주의적 예수가 아니라 흙먼지 나는 여리고 언덕을 초라한 나귀를 타시고 바보처럼, 사마리아인처럼, 억울하게 아파하는 사람들과 동고(同苦)하시기 위해 터벅터벅 오시는 겸손한 예수를 가슴 시리게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박사의 말과 글을 통해 ‘바보 예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우아한 패배’ ‘발악과 발선’ ‘동고심’ ‘자아실현이 아닌 자타실현’ 등의 어휘가 특히 마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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