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 장미란의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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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장미란 선수. 그녀가 경험한 하나님은 '기도를 하면 언젠가는 꼭 들어주시는 분'이다.


아테네 올림픽 개최 2개월 전인 2004년 4월, 세간의 관심은 온통 여자 역도에 쏠려 있었다.
스물한 살의 여자 선수가 과연 세계신기록을 깰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올림픽 역도대표 선발전(전국역도선수권대회)이 열리는 잠실 올림픽 역도경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녀는 기도만 했다.
‘하나님, 꼭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마음이 찜찜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조금 바꿔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이 기도하게 해주시면 할게요.’ 경기 직전, 기도는 또 바뀌었다. ‘하나님,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선수가 되게 해주세요.’
용상 3차 시기, 그녀는 170㎏의 바벨을 번쩍 들어올렸다. 세계 신기록이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2004년 4월 12일. 여자 역도 장미란(29·고양시청) 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도 세리머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장 선수는 이 용어 대신 “감사의 표현”이라고 불렀다.
“그 자세는 정말 저도 모르게 나온 거예요.”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시 화신로 장미란 체육관에서 만난 장 선수는 8년6개월 전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이런 공백의 시간이 없었어요. 대학원 수업도 듣고, 못 만난 사람들도 만나고 있어요. 어디를 떠나거나 그런 게 아니고 그저 맘 편하게 쉬고 있는 거예요.”
런던 올림픽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용상 3차 시기를 실패한 뒤 바벨에 손 키스를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에 경기장을 떠났다.
보는 이들에게는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장면이었다.
“런던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나는 굉장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구나’ 깨달았어요. 성적도 안 좋고 메달도 못 땄지만, 잘하든 못하든 박수 쳐주시는 분들을 뵈면서 정말 돈 주고 살 수 없는 사랑과 위로를 받았어요.
마음이 너무 풍요로웠어요. 아쉬움은 있지만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없고요.”
문득 장 선수의 신앙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님께 다가가는 스타일이랄까요. 하지만 뭘 하더라도 기도로 준비합니다.
오늘도 인터뷰 앞두고 ‘오늘 만남이 복되게 하시고 많은 이들에게 좋은 향기가 나는 인터뷰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심지어 마트에 가더라도 좋은 주차공간을 달라고 기도한다니까요(웃음).”
기 도를 즐겨하는 장 선수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다소 의외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교회를 못나가게 하실 정도로 반대가 심해서 엄마랑 교회 새벽기도에 나가면서 ‘아빠도 하나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장 선수의 아버지 장호철(60) 씨는 장 선수가 메달을 따면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딸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아버지와 하나님간의 진실한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녀에게 신앙의 멘토가 있냐고 물었다. 역시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김소영’.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훈련 중 이단평행봉에서 추락, 목뼈를 다쳐 1급 지체장애인이 된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출신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앙을 갖고 상담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소영 언니랑 많은 얘기를 나눠요. 함께 기도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요. 저한테 큰 힘이 되는 분이에요.”
장 선수는 운동과 신앙의 공통점이 ‘훈련'이라고 했다. “신앙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훈련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면 멀어지잖아요. 특히 지금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도 하고 싶고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시대라서 생활 가운데 늘 하나님을 찾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목사님 앞에 앉아 있는 듯했다.
그녀는 훗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한 ‘장미란’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생의 기도제목 같았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기도를 꼭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는 장 선수. 하나님은 이미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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