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작곡가 김정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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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재미교포 작곡가 김정호(73·미국 필라델피아 연합교회) 집사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면서 ‘힘든 육신 이끌고 70년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았네’라며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가는 줄 알았다.
횡경막에 물이 고여 주사기를 꽂아 물을 빼낸 뒤 겨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병원에선 김 집사의 폐에서 종양까지 발견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직 방송사 PD였던 그는 1981년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처음 김 집사는 1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다 남성 옷을 취급하는 작은 가게를 열었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안정도 찾았다.
그런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게 화근이었다.
94년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다. 2년간 고된 투병생활을 견뎌야 했다.
심장박동기에 의지한 자신을 보면서 김 집사는 비로소 30년 동안 미뤄왔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서울大 작곡과에 합격 시켜 주시면
성가 300곡을 써서 드리겠다고 서원


서울대 음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김 집사는 “작곡과에 합격만 시켜주시면 성가 300곡을 써서 드리겠다”고 서원했던 것.
수술 후 몸을 추스린 그는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가를 쓰기 시작했다.
간증을 노랫말로 쓰거나, 성경을 읽고 감동한 부분, 목회자들이 쓴 시들에 곡을 붙였다.
2000년 9월 서울대 음대 후배들의 도움으로 ‘새 찬양의 밤’ 행사를 열었다. 10곡을 선별해 하나님께 드렸다.
감동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행사를 준비하면서 무리한 탓인지, 김 집사는 당뇨 등 합병증까지 겹쳐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제 심장을 보았습니다. 선명한 십자가 형태의 수술 자국이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씀에 의지해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또 쓰러지고 노인성 질환까지 겹치면서 그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고백했다.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자, 펜을 잡았다. “나의 일기를 남겨보자.” 지난해 9월부터 힘든 이민생활과 투병생활, 작곡을 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그것을 모아 올 초에 ‘머나먼 길 걸어온 나그네’란 책으로 출간했다.
그러는 동안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는 김 집사. 최근에는 대지진 참사 이후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나미의 아픔’이란 노래도 만들었다.
시인 곽상희씨가 보내온 글에 곡을 붙였다. 관현악과 피아노 반주용 악보, CD까지 곁들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중앙본부에 전달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의 직전까지 가본 저이기에 누구보다 일본인들의 슬픔, 아픔을 잘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주님께 덤으로 받은 목숨인데, 이렇게 나누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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