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콩쿠르 여자 성악 1위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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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잠겼다. 눈도 어두침침해졌다. 체력은 바닥이 났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무리 봐도 불가능했다.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내려놓음. 바닥난 체력, 두려운 마음, 우승의 열망마저 내려놨다. 그리고 맡겼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지난달 30일 저녁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트홀에서 ‘서선영’이란 이름 석자가 호명되는 순간, 서(27)씨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서씨는 이날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여자 성악부문 1위에 올랐다. 한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서씨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1위)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소감을 말했다.
서씨는 우승 경험이 많다. 지난해 스페인 프란체스코 비냐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올 3월엔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국제성악콩쿠르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무대에 서 봤지만 이번만큼 떨리고 힘든 적은 없었다.
원래 서씨는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아닌 BBC 주최 콩쿠르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잠깐 귀국한 사이 콩쿠르 신청 기간을 까먹고 말았다. 꼼꼼한 성격의 그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생각났다.
울산에 있는 부모와 인천에 있는 시댁 식구들도 멀리서나마 응원했다.
매일 새벽기도회를 나가는 이들은 2주간의 콩쿠르 내내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서씨를 도왔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서씨의 고백 뒤엔 이 모든 사건이 겹쳐 있는 것이다.
서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2009년 독일 뒤셀도르프 슈만국립음대에 유학 왔다.
남편 윤규섭씨와 함께 뒤셀도르프순복음교회(이경원 목사)에 다녔다.
두 사람은 성가대에 유치부 교사, 금요 찬양팀으로 열심히 봉사했다.
서씨는 “예배드리며, 봉사하며 받은 은혜가 없었다면 결코 유학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유학생들에게 현지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7월 중순 졸업하는 서씨는 이미 스위스 바젤 극장에 취업이 됐다.
비제의 ‘카르멘’에서 주연급인 미카엘라 역을 맡아 다음 달부터 선보인다.
대학생 때였다. 경연대회 우승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지만 주시지 않았다.
그 후부터 서씨의 기도는 ‘주세요’가 아니라 ‘알아서 해 주세요’로 변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응답은 어김없이 더 빨랐고, 결과는 더 좋은 것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최현수 교수가 은사가 된 것, 남편을 만난 것, 지금의 대학으로 유학 온 것 등….
마리아 칼라스. 올봄에 우승한 콩쿠르 이름이기도 하지만 서씨가 가장 존경하는 오페라 가수다.
전후 최고의 소프라노로 불린다. 서씨는 “칼라스는 무슨 역할을 해도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백지 같은 사람”이라며 “나 역시 해외든 국내든 어느 곳에 있든지 삶과 오페라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백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편 37:5∼6). 서씨가 즐겨 묵상하는 말씀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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