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말기 환자 장근수씨 금연전도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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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남원 갈계교회를 순례중인 장근수씨.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서울 여의도공원을 울렸다. 행인들이 귀를 기울였다.
“담배를 피우면 폐가 이렇게 됩니다. (담배는) 독약입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노인이 보여주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폐암 말기 환자인 노인의 폐 사진. 허연 암세포가 폐를 뒤덮고 있었다.
둘러멘 배낭에 부착한 문구 역시 담배의 해악에 관한 경고 내용이다. “당신이 내뿜는 담배연기. 자신은 물론 주위 여러 사람의 모든 암, 특히 폐암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이 경고 문구를 정하는 데도 많은 기도를 했다는 금연전도사 장근수(67·경기 부천 은성제일교회)씨.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여 금연홍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와의 첫 만남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5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손을 잡고 38선을 건넜다. 남쪽에 발을 디딘 뒤 한 해가 지나 한국전쟁을 맞았다.
가난은 견디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호방한 성격은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큰 체격, 화통한 성격에 맞게 그는 고등학교까지 럭비선수로 활약했다. 그때까지 담배와의 인연은 없었다.
“1965년이었을 거야. 군 생활할 때 모두가 담배를 피우니까 안 피우면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 10분 동안의 휴식 시간, 담배 연기에 시름을 담아 내뿜곤 했죠.”
연기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게 참 신기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와 담배는 둘도 없는 친구가 돼 버렸다.
윗옷 가슴팍에 붙은 주머니는 언제나 ‘솔’ 담배의 자리였다. ‘솔’이 든 주머니춤을 만질 때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 한 갑 이상은 기본이었다. 화가 날 때도, 기분이 좋을 때도.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엔 담배가 꽂혀 있었다.

폐암, 그리고 시한부 인생
건강엔 자신 있었다. 몸에 이상도 없었다. 회사에서 하는 정기검진조차 받지 않았다. 암(癌)? 그냥 남 얘기에 불과했다.
40여년 담배를 피우면서도 암 걱정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2007년 5월 어느 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던 그에게 감기의 옷을 입은 암이 스며들었다.
“감기 기운이었죠. 목이 깔깔한 느낌. 목감기 같아서 약 먹고 따뜻한 차를 마셨죠. 보름이 지나는데도 차도가 없더니 급기야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죠.”
검사 이틀째. 폐암 말기 판정.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은 어깨로 전이됐다.

신앙을 얻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면서 고통을 배가시킨 건 다름 아닌 언어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홀로 누워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죽어도 내가 태어난 곳에서 죽으리라.’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신앙은 얕았다. 미국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사람을 사귀기 위해 교회 문을 두드렸을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뭐 신앙이 중요한 건 전혀 몰랐죠. 그냥 나 편하자고 다닌 거니까.”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 예배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항상 예배 시간이면 의미 없이 되뇐 사도신경. 그날따라 두 눈에서 눈물이 홍수를 이뤘다.
30분이나 계속됐다.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 그는 죽을 방법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편하게 죽을지 고민했다. 열차에 뛰어들까, 높은데서 떨어져볼까….
“하루는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다 눈물이 나면서 너무 살고 싶은 거예요. 30분 동안 울며불며 기도했죠.
생떼를 쓴 거지. 나 좀 살려달라고….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얀 형체만 보이는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금연운동에 나서다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그. 생활부터 달라졌다. 새벽기도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 몸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배낭을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흡연, 그 해악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특히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청소년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담배를 입에 무는 아이들에게 위험을 알리고자 했다.
“산에 금연 현수막을 걸어놓으면 찢어놓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고 힘든 점도 많아요. 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고요.”
하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더 많다. 그의 활동 때문에 아들이 담배를 끊었다며 감사하다는 한 아주머니의 말, 가슴이 뭉클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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