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에게 크리스천 삶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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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크리스천의 삶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나를 희생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7일 자택 정원에서 소나무 가지를 만지고 있는 김 교수.

 

일주일 남짓 쏟아붓던 장맛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던 27일 오후 서울 연희동 김형석(91) 교수 댁을 찾아갔을 때는 오락가락하던 여우비마저도 잠시 멈췄다.
구순(九旬)을 넘긴 은발의 노교수는 해맑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그는 요즘도 주 2∼3회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설교와 강연을 한다.
사회단체 강연에서 그는 기독교적 결론을 내려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옛날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집필 작업도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건강을 걱정하자 “내 나이쯤 되면 건강을 위해 건강을 걱정한다”며 “나는 일찍부터 예수님한테 배운 게 하나 있는데 일을 위해서 건강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기도드린다. “주님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기쁨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합니다. 그거 못하면 찾아가셔도 좋고요.”

 

-역사의 격랑을 살아오셨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하실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외국 사람에 비해 우리가 너무 어렵게 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가 겪은 시련, 사회적 갈등과 모순 등과 비교해 보면 행복하고 편하게 산 셈인데도 말이죠. 저는 386세대, 4·19세대를 다 겪어 보았지만 386세대는 4·19세대에 비해 무척 행복한 세대입니다.
4·19세대는 강의 듣고 저녁에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밤새도록 뛰어다녔죠. 불만불평을 얘기할 여유가 없었어요. 386세대들이 불평을 이야기할 만한 기반을 만들어준 것은 4·19세대이고 4·19세대가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것은 우리 세대였어요.
우린 일제시대(일본강점기)를 겪었죠. 해방되고 공산치하를 경험했죠. 4·19를 겪었고 군정시대 민주화 투쟁도 겪어 봤는데 굳건한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지 좌절하거나 절망할 과제는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천으로서 가지고 있는 희망과 의지가 제일 강했던 것 같아요. 어떤 때든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았거든요.”

 

-일본강점기 신앙을 가지셨습니다. 학생 때였을 거고요.
“일본서 공부할 때 제일 절망상태였어요. 열네 살에 신앙생활이 들어오고 꼭 10년이 됐을 때였지요.
이때 크리스천답게 산다는 게 뭔지 찾고 싶었어요. 찾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성경을 읽는 것이었어요. 그때 들려온 성경말씀이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택했다’는 요한복음 15장 16절의 말씀이었어요. 그 말씀을 읽고 나니까 모든 문제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택하셨으니 아무 문제없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기도를 드렸어요. 항상 드린 기도지만 그때 드린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하고 끝났어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나니까 다른 기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가르쳐주신 뜻을 그때 알았어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얻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신앙이라고 말하기엔 요즘 교회 상황이 좋지 않은데요.
“크리스천이 교회를 떠나는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요. 옛날에는 교회 수준이 사회보다 높았어요. 그러던 것이 사람들이 교회보다 수준이 높아지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된 거죠.
교회를 멀리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하나는 교회가 지성인이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사회에 대해 교회가 방향을 제시해 줘야겠는데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은혜 받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에요.
목사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것, 지성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문제와 관계없는 설교만 하고 있어요. 교회주의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 대표이므로 있어야 하지요. 그러나 교회주의에 빠지면 교회가 목적이 되고 좋은 교회만 만들면 기독교가 완성됐다는 실수를 하게 돼요.
예수님은 한번도 좋은 교회를 만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하늘나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지요.
정작 중요한 건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 정신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요구하는 것은 인생의 진리를 달라는 거예요. 내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지요. 기독교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이 주신 진리, 가르치심이 중요한데 지금 교회는 진리는 주지 않고 교리싸움만 하고 있어요.”

 

-교회가 본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목회자가 갖춰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요.
“인간을 좀더 깊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자유민주주의가 꼭 믿어야 하는 게 하나 있는데 휴머니즘이에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희망을 가지는 거. 그게 휴머니즘이에요. 휴머니즘은 인간의 존엄성인데 휴머니즘을 떠났을 때는 희망이 없어요.
목사들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은 거룩한 척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권위를 사람이 차지하려 해서는 안 돼요.
목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교인 앞에서 목사들이 가지는 태도가 그래요.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거듭날 수 있어야 하는데….”

 

-크리스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조언하신다면.
“나는 세상 사람과 다른 것 같이, 특별한 것 같이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직장동료, 이웃, 가족 등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꼭 전도를 해야 한다,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사실 때 보여주셨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돼요.
예를 들면 사회악이 많은 가운데서 우리는 사회악의 유혹을 받지 않고 극복할 수 있고 또 절망 상태나 어려움이 왔을 때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살기 때문에 희망을 항상 전해줄 수 있어야 해요.
때가 와서 가능하게 되면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를 희생시키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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