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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뻤다. 
다홍색(scarlet) 구두에 하얀 블라우스 차림. 
오렌지 빛깔이 도는 머리칼은 어깨까지 늘어뜨렸다. 
부드러운 표정과 경쾌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화사한 느낌을 줬다.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35)씨가 10일 낮 서울 여의도동 국민일보빌딩 1층 카페에 도착하자 이씨를 맞은 이들은 하나같이 “예뻐졌다”고 했다. 그녀는 “감사하다”며 밝게 웃었다. 
2000년 7월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던 그녀. 하나님에게 고통 주시는 이유를 물었다. “너를 세상에 다시 세울 것이다.” 응답을 받았다. 
고난을 견뎠다. 이씨의 이야기는 2002년 12월 본보 ‘역경의 열매’에 처음 소개됐다. 
이듬해 5월 낸 책은 30만부 넘게 팔렸다.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밀려왔다. 
최근엔 SBS 토크쇼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 
어느덧 희망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교통사고 가해 차량 운전자가 소주 5병을 마셨었다면서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생각해봐도 이해가 잘 안될 것 같아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는 것 외에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용서한다고 하니 그 말이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던데요. 
사실은 그냥 가해자를 잊어버리고 산거예요. 
제 고통을 이기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빴으니까요.”
그해 두 달 동안 시신 18구가 이씨의 침대 곁을 지나갔다. 
어머니는 전신 붕대로 미라 같은 딸의 입을 찾아 열심히도 밥을 밀어넣었다. 
동석한 어머니 심정(61·선한목자교회) 장로는 “저희가 대단한 신앙을 가진 게 아니었어요. 
그저 그때그때 견디도록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씨가 “엄마, 그게 신앙인 것 같아”라고 했다. 심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넘게 사고를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 대해 계속 간증하고 계시는데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힘들지 않나요. ‘간증의 역설’이라고 간증에 스스로 지치는 분도 있다고 하더군요.
“카세트 테이프 돌리듯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초반엔 힘들었어요. 
그런데 세리 삭개오(눅 19:1∼10)가 간증을 한다면 매번 ‘나는 키가 작아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반복해야 해요. 
듣는 상황에 따라 제 얘기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이씨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제 간증을 수백 번 들은 엄마가 늘 처음 듣는 듯한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요. 
저도 잊고 살다가 간증하면서 ‘그때 하나님이 그런 힘을 주셨지’ 하고 하나님 은혜를 다시 떠올려요. 
그러면서 눈물 흘리고 또 감사하고.”

스칼렛, 좋아하는 색

구두가 반짝거렸다. 
“다홍색을 좋아하시나봐요?” 
“예, 제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그러고 보니 전날 ‘힐링 캠프’에서 입은 원피스도 스칼렛이었다. 
색채심리학에 따르면 스칼렛은 활력, 기쁨, 자신감, 용기, 낙천성, 자발성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사고 당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 재학 중이셨지요. 
오똑한 코, 고운 입술, 깨끗한 피부를 다 잃고도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지실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예요. 
하나님이 여기서 끝나게 하시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너를 세상에 다시 세울 것이다. 병들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쓰실 것이다.’ 
2001년 봄 한 목사님이 해주신 기도가 제 기도 응답으로 들렸어요.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뤄주시고 계세요, 
지금. 여러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으니까요. 영광스럽습니다.”
이씨는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제 고통이 끝없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는 걸 이미 알게 됐어요. 터널을 통과해 하나님 계획을 알고 영광을 보게 됐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해요.”
그때 카페로 머리 희끗한 장년 남성이 들어왔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지선씨, 안녕하세요? 책 잘 읽었어요.” 처음 보는 분이었다.

-정말 연예인이 되셨네요. 
예뻐졌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MC 유재석씨가 이상형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그런 분을 실제 본 적 없으세요.
“많았어요. 
그런데 다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더라고요(웃음). 
그런 사람 나타나면 대시(dash)해야 하는데 옛날에도 그랬고. 
먼저 대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에서 혼자 밥 해먹고 청소하고 그런 게 많이 쓸쓸해요. 어디에 한 명은 있겠죠?”
심 장로는 “지선이가 말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 좋아한다는데 호감 갖는 사람 묘사를 들어보면 까칠한 남자더라고요(다함께 웃음). 
이제 성숙했으니 잘 맞는 짝을 만나겠지요”라고 말했다.

자꾸 보면 정든다

-미국 UCLA대학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계시지요. 
수업 과정 3년은 다 마치셨다고 했는데 논문은 어떤 걸 준비하시나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인식변화 과정에 대해 쓰려고 해요. 
제 경험에서 나온 건데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많이 보다 보면 익숙해지잖아요. 
인종 연구에 나오는데 백인이 흑인 친구를 두면 흑인종 전체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는 거예요. 쉽게 말해 자꾸 보면 정든다는 이론이죠.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 캠프 생활 전후의 인식변화를 연구하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사회복지 정책이나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일에 관심이 있어요. 공부를 마치면 하나님이 길을 보여줄 거라고 믿어요.”

-곧 추석이네요.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이들이 많아요. 
삶이 힘들어서겠죠.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고요.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네요.
“제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몰랐어요. 
하나님은 저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모두에게 특별한 계획을 주셨어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 하나님을 믿으면 되는 것 같아요. 
희망이 뭐 별건가요. 
여기가 끝이 아닐 거라는 작은 기대예요. 그만두면 안돼요.”
마지막으로 이씨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펜을 쥔 채 말했다. “제 오른손 보세요. 
네 손가락 첫 마디가 다 잘려나갔지만 중지에 살집이 조금 있어서 이렇게 받치고 글을 쓸 수 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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