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종합건설 김용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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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현 회장은 단 한번도 자수성가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성물이고 감깐 맡기신 것이브로 귀한 하나님 사역에 환원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네에서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잡놈’ 중의 ‘잡놈’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용가리’라고 불렀다. 아마도 ‘용가리통뼈’(겁없는 친구)란 의미인 것 같았다. 교회에서 목사님은 ‘꼬마 깡패’라고 불렀다.
이랬던 그가 지금은 어엿한 크리스천 기업가가 되었다. 데이빗종합건설 김용현(65·목동제일교회 집사) 회장의 이야기다.
김 회장의 삶은 ‘변신’ 그 자체다. 현재의 모습에서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 넘치도록 물질의 축복을 받고 청지기로 살아가는 자, 나눔을 실천하고 전도에 힘쓰는 자로 살아간다.
사업가의 꿈을 이루고 이제는 세계 선교에 도 쓰임받고 있는 김 회장을 12일 서울 오류동에 자리잡은 그의 회사에서 만나 파란만장했던 삶과 신앙, 사업이야기를 들어봤다.

 

생애 최초의 성탄절
성탄절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께 꼭 헌금을 해야 한다고 졸라 1000원을 건네받았다. 돈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써버렸다.
팽이를 사고 오징어도 한 마리 사먹었다. 이미 군것질로 배가 불렀지만 교회에 와서는 자기 몫의 과자와 사탕을 다 먹고 친구들 것도 빼앗아 먹었다.
결국 저녁에 탈이 났다. 데굴데굴 구르며 난생 처음 기도했다.
“예수님 생일날 제가 더 많이 먹어서 죄송해요. 앞으로 안 그럴 테니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 12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사업가를 꿈꾸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가출했다.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5세에 철물점에 취직했다. 김 회장은 하루빨리 유명한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18세에 두 번째 가출을 감행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외국인 선교사를 만났다.
“철부지 주일학교 시절, 교회에만 가면 순한 양이 되었어요. 성령의 의미를 몰랐지만 성령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었던 거지요.
두 번째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를 만나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은 늘 저와 함께하신다고 믿으며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철중개업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강원도 동해로 갔다.
두 달간 오징어배를 타며 꽤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거센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징어잡이 생활을 정리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잘 나가는 고물상을 만나고 고물상 면허도 땄다.
양구장로교회 김종환 장로에게 고물 다루는 법을 배우고 가전제품 수리법도 배웠다.
“고물을 있는 그대로 팔지 않고 나름의 개조를 통해 물건의 가치를 높였어요.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죠. 양구에서 돈깨나 버는 사람이라고 소문났어요.”
또다시 도박에 손을 댔다.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8년 만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도박을 끊겠다는 혈서를 쓰려고 도끼로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내리쳤다. 애초에 한 마디만 자르려고 했는데 두 마디가 잘려나갔다.
방탕하게 살고 교회도 나가지 않았지만 항상 환란에서 구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천 기업가로 세우신 하나님
스물다섯이 되도록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한 김 회장은 옆집 아주머니에게서 19세의 어린이집 교사를 소개받았다.
첫 데이트를 마치고 프러포즈했다. 그녀는 “결혼할 사람은 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어린시절 주일학교에 나갔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18세 때 서울역에서 선교사를 만난 후 두 번째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깨끗한 크리스천 사업가가 무엇인지, 성경의 원리를 통해 성공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신앙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한갓 졸부가 아닌, 주님의 일에 크게 쓰임받는 종으로 쓰시기 위해 더 큰 물가로 인도하셨어요.”
서울로 옮겼다.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사업 목표를 세웠다.
그에게는 편협하게 자기 배만 채우는 사업이 아닌 하나님의 광대한 사업에 쓰임받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저의 비전은 수많은 순교자와 선교사들의 핏값을 기억하면서 땅끝선교·북방선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새시대리점을 하며 영등포성당, 종로와 서초동 성당, 창신교회와 명성교회 등의 관련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승승장구하며 교만해질 즈음 부도를 맞았다.
자살을 생각했다. 1남 3녀의 아이들과 아내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빚을 다 갚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며 하나님과 약속했다. ‘주님, 제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십일조는 철저히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님의 선교에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손자이름을 딴 데이빗종합건설을 하며 또 한 번의 부도를 맞았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 부도가 났을 당시엔 문어발식 투자에 급급했다면, 현재 경영하는 회사들은 온전히 주님의 선한 목적에 쓰임받기 위해 운영하고 있어요.”

 

북방선교 땅끝선교
1998년 서울신학대 평생교육 합창단과 연합으로 선교회를 출범시켰다. 엔게디 합창단은 하나님의 복음을 찬양과 헌신적인 봉사로 국내외에 전파했다.
엔게디 합창단은 사모들로 구성됐다.
김 회장은 오는 20일 ㈔남광선교회를 창립한다. 예전에는 연합으로 했는데 이제는 직접 그들의 사역을 도우려 한다.
“파송했는데 돕지 못하는 선교사들, 들어올 수 없는 선교사들을 도울 계획이에요. 제가 갈 자리에 대신 간 선교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이지만 앞으로는 목동제일교회와 함께 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김 회장은 하나님이 이 자리까지 이끄신 구원의 손길을 간증하고자 ‘세상에 가치없는 사람은 없다’(나침반 출간)를 펴냈다.
그는 “물질은 하나님의 성물이며 하나님이 잠깐 맡기신 것”이라며 “성물을 함부로 쓰는 것은 욕된 것”이라고 말했다. 성물은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쓰여야 하므로 퍼주기 식 나눔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나눔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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