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의 여왕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의 인생 3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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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1일 정년퇴임한 백남옥 전 경희대 음대 교수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하나의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고 싶다”며 “내년 1월부터 유럽 오페라의 본고장으로 투어를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막 충전이 끝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충만해 보였다.
‘영혼을 울리는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메조소프라노 백남옥(66).
1967년 서울음대 2학년 땐 제6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성악부 1등을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백씨는 이후 독일 유학 시절 베를린국립음대 오케스트라와 협연, 한국 성악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렀지만 변함이 없다. 지난달 32년간의 경희대 교수 임기를 마치고 정년퇴임한 백씨는 15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명예롭게 퇴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드린다”며 “인생 3막을 향해 돛을 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아버지 백인엽 장군과 함께 살았다.
5·16 군사쿠데타가 났을 때 재산을 헌납하고 부정축재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이혼한 어머니와 전 졸지에 가장이 없는 신세가 됐어요. 집도 없이 셋방을 전전했어요. 김학근 선생님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지요. 육신의 아버지는 곁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천상의 목소리를 주셨어요.”
백씨 인생의 1막은 동아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쥔 순간부터 시작된다.
노산 이은상은 ‘성용도아’(聲容都雅·음성과 모습이 모두 우아하다는 뜻)라고 격찬했다.
2막은 조영식 경희대 설립자가 어느 날 길가 음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듣고 그녀를 교수로 채용하면서부터다.
1∼2막을 화려하게 마친 터라 좀 쉴 법도 한데 그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학교엔 그림자도 들여 놓지 않겠다면서도 후학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내년 1월 31일에는 오페라의 본고장으로 오페라 투어를 떠난다.
후학들에게 제대로 된 오페라 문화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예술감독 자격으로 뮌헨과 파리, 밀라노 등 세계 오페라의 본고장을 꼼꼼하게 동영상에 담아올 작정이다.
투어는 2월 중순이면 끝나고 3월이면 3막의 서곡을 보여줄 작정이다.
백씨는 69년 청빈한 목회자 집안 다섯 째 아들과 결혼했다. 그때부터 서울 만리현교회에 다닌다.
담임목사였던 시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가끔씩 특별찬양. 헌금송도 부른다. 그녀는 개미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묵상을 하고 남편과 딸을 위해 쌀을 씻는다. 우유 한 잔 먹고 새소리를 듣는다. 잠시 산책을 하고 아침밥을 짓는다. 저녁엔 촛불을 켠다. 촛불 아래서 기도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용서와 관용의 마음이 절로 찾아든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구순이 된 아버지에게도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백씨는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한복과 시댁에서 가까이하게 된 성경을 최고의 보물로 여긴다.
한복은 조선 여인의 절개와 품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녀의 분신이다.
그래서 요즘도 한복이 아닌 무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성경은 40대 이후 신경성 위장염으로 폐인이 될 정도였을 때 건강을 되찾게 해준 ‘보약’이다.
그녀는 지금도 매일 밤 촛불을 켜놓고 읽고 또 읽는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시기와 질투, 헛된 욕망도 한 순간에 녹아버린다.
백씨의 행복론은 소박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하지요. 속아주고 져주면 돼요. 그게 부활이고 행복인데, 사람들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요.”
그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나비부인 중 마지막 순간이다. ‘명예로운 삶을 살지 못할 바에야 삶을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장면이다.
백씨는 무대에 설 때 꼭 한복을 차려 입는다.
오는 23∼24일 열리는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 40주년 행사에도 전통의상 차림을 하고 노래를 부를 거다. “쇼팽은 연주여행을 하면서 모국의 흙을 항상 갖고 다녔다고 해요.
전쟁과 식민지를 겪은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요. 저는 한국의 문화홍보대사로서 흙 대신 우리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해외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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