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방앗간 돌리고 복음 전하며 살아 온 권옥자 권사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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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떡방앗간 추석 풍경, 송편 빚을 떡쌀을 빻으러운 소님들로 분주한 모습. 이현영, 윤수옥씨 부부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어머니가 또 뇌출혈 증세를 보여서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너무 조용했다. 휴대전화로 들려오는 이현영(42·부여 오량교회 집사)씨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추석을 앞둔 대목이라 한창 바쁠 시간인데 이상했다. 그는 부여 화양면소재지에서 떡방앗간을 한다.
8일 오후 1시쯤 충남 부여군 화양면 양화시장. 5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조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50대 농부는 “올해는 워낙 폭우가 많이 쏟아져 곡식과 과일, 채소를 거둬들일 수 없어서 장날에도 파리가 날릴 판”이라고 했다.
떡방앗간은 양조장 건너편에 있었다. 시골장 어디나 그렇듯 활기가 없다. ‘벧엘떡방앗간(833-3041) 주일은 쉽니다’.
골목에 접어드니 길가 한쪽에 높게 세워진 간판이 보였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방앗간 사장 이씨의 표정이 심란해보였다.
“엄니를 모셔와야지, 안 디야.”
쌀을 빻던 이 씨의 큰 누나 혜자(53) 씨의 시선은 막내 동생 이씨를 향했다. 그녀는 명절 대목을 앞두고 친정 동생을 도우러 온다고 했다.
이씨의 아내 윤수옥(39·오량교회 권사)씨는 시누이와 남편의 동정을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엉거주춤하는 사이 대여섯 명의 손님이 몰려왔다.
“끼이익, 꾸르륵” 기계음이 들리더니 방앗간은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가 얼른 가서 모여와야죠.” 서울내기 며느리 윤씨가 쌀가루를 내리던 방망이를 내려놓고 방앗간 골목에 세워놓은 10년이 넘은 승합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여읍내 병원으로 가서 시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서다.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는 시어머니 권옥자(78·오량교회 권사)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난 8월에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환자였다. 148㎝ 키의 시어머니.
이런 그녀가 떡방앗간을 하면서 20마력(1마력은 말 한 마리가 끄는 힘)의 원동기를 돌리며 평생을 살아왔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권씨는 입을 열었다. “벌써 한 50년이 넘었지유.
큰 아들이 한 살 때 남편이 방앗간을 차렸시유. 그 양반은 5일장을 돌면서 물건을 팔러 다니느라 신경도 안썼시유.
집 채 만한 원동기를 혼자 돌렸지유.
첨엔 힘이 달려 쇠바퀴에 달려 나가 떨어지곤 했지유. 힘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꾀(요령)를 알면 어렵지 않아유.”
남편은 1987년 겨울 그녀의 곁을 떠났다. 당시 대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현영씨는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천사 같은 아내가 온 것이었다. 윤씨는 당시를 회고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97년 6월. 부여 외가에 다니러 왔었는데 3일 동안 꿈속에 떡을 얻어먹는 꿈을 꿨어요. 그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편을 만나게 됐죠. 그리고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고, 내리 3남매를 낳았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권씨는 평생 동안 방앗간을 돌리고 전도하며 살았다고 했다.
자식에게 특별히 잘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큰 아들 욱영(51)씨은 인터넷TV 아나운서이고 둘째 아들 신영(49)씨는 화공학 박사로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한다.
셋째 딸 현주(46)씨는 인근 건양대 병원 직원이다. 권씨가 도착하자 가족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권씨는 맏딸의 손을 꼭 잡았다.
“큰 딸은 지가 예전에 많이 아픈 바람에 병 수발 하느라 고등학교에 못 보냈시유. 막내도 대학을 포기했지유.
그게 가슴이 아프네유.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웃으면서 갈 수 있는 디 요것들이 눈에 밟히네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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