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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울리는 소리,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악기인 색소폰을 연주하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심삼종교수는 지난 20여년간 한국 클래식 색소폰을 대표하는 색소포니스트로 수많은 앨범과 공연에 함께 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어 후학을 가르치며 또한 많은 연주활동을 병행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심삼종교수의 삶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심삼종교수는 1969년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자락에 있는 탄광의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4형제인데 그 중에서 셋째로 태어났다고 해서 삼종이란 이름을 얻은 심삼종교수는 산간벽지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가 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어려운 가정형편상 서울에 있는 학교는 못가고 인천기계공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심삼종교수의  꿈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을 갖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학년 때에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밴드부는 ‘군기’가 아주 강한 곳입니다. 

선배들에게 엄청 맞으면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취업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느덧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그때에 경찰학교에서 군악대를 뽑는다고 하여 응시해 합격해서 입대하였습니다. 

논산연무대에서 훈련을 마친 후 의경 군악대원으로 복무를 시작하였는데 이 곳의 군기가 아주 엄했습니다. 

고참이 되기 직전인 상경시절에 ‘집합’을 당하였고 이 때 고참의 군화 발에 허리를 잘못 맞아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에 가보았더니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 3일 뒤에 심교수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채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축현장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만취한 채로 친구를 태우고 운전하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이로 인해 옆에 탄 친구가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내어 경찰에 입건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불행한 일들로 심교수는 마음에 큰 고통을 겪었으며 이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연속적으로 닥쳐온 어려운 일들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어려움을 이겨내 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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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심교수는 늦깎이 나이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처음으로 클래식 색소폰 전공이 신설이 되어 한명을 뽑는 시험에 지원하여 합격하였습니다. 

대학4년을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마치고 심삼종교수는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중 하나인 피바디 음학대학원으로 유학길을 떠납니다. 

달랑 비행기표와 한학기 등록금만을 준비한 채 시작한 유학길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청소기 판매부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각고의 노력끝에 피바디 음학대학원 석사과정과 전문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국내에 귀국하여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클래식 색소폰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음악연주자로는 드물게 2010년부터 지금까지 4장의 연주앨범을 매년 연이어 발표하였고 수많은 음악회에 초청받아 연주생활을 하며 틈틈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무료로 연주하는 봉사활동도 병행해오고 있습니다. 

2년전부터는 매년 산간지방에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음악회를 열어주고 병원의 환우들을 찾아 다니며 연주를 하고 자기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해주며 희망의 메신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 오지 산골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한민국 최고의 색소포니스트가 되어 영혼을 울리는 연주와 감동적인 라이프로 감동을 전하는 희망의 메신저 그가 바로 심삼종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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