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일 (9월 29일 주일) 
카리온에서 테라디요스까지 2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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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온에 도착해서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수녀님이 순례자 한사람 한사람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향긋한 티와 빵을 준비하러 순례자들의 피곤한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함께 순례여정을 하는 여러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양재오라는 청년을 만났다. 

약 5일 전부터 자주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청년이다. 참 잘 걸은 청년인데 이번에는 발목 아킬레스 건에 염증이 생겨서 고충을 받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청년은 붕대로 다리를 칭찬 감고 왔다. 

의사가 3일 정도는 걷지 말고 요양하라고 진단했다. 

이런 경우엔 의사가 편지를 써 주는데 그 편지가 있어야만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 수가 있다. 
보통 알베르게는 하루이상 머물 수가 없다. 오전 8시전에는 모두 나가야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다음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혼자 남은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남편은 그에게 따뜻한 커피를 만들어 주고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했다. 그는 카톨릭 신자이다. 성경을 묵상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청년과 헤어져 밖으로 나오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처럼 판초를 꺼내입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일이라 17.8km 정도를 걷기로 했다. 

함께 길가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걸으면서 매일 걷는 동안 찬양과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예배를 드렸지만 주일에 믿는 형제 자매들과 한 장소에서 예배함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새삼 느꼈다. 

비와 함께 바람이 맞불어와서 걷기가 더 힘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17.8km동안 마을이 없어 쉴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중간에 2개의 휴식처를 만들어 놓았는데 담배피는 순례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마침 날씨가 좀 개어서 판초를 깔고 잠간 들판에 앉아서 쉬었다. 

어제 저녁에 삶아 놓은 달걀을 먹으니 꿀 맛이었다.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남편이 남극 탐험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새클턴의 이야기 였다. 

27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Endurance (인내,  끈질김, 참을성)"라 이름 붙인 배를 타고 남극 탐험에 나섰다. 

모진 풍파와 추위, 우여곡절 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하여 대원들을 다 살린 이야기였다. 
예전에 연애할때 역사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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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일 (9월 30일 월요일)
테라디요스에서 베르시아노스까지 2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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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시아노스에서 순례자들에게 베푼 친절과 대접은 기억 할 만 하다.

작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카톨릭)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이다. 

미국에 산다는 이탈리아인이 영어로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자원 봉사자인 것 같다. 

카리온에서도 교구 알베르게에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남성 봉사자가 있었다. 

뉴저지에서 왔다고 했다. 먼저 산티아고 길을 걷고, 이제 몇달 간 봉사하러 왔다고 했다.
다른 남성 봉사자 두 사람 모두 밝고 정중한 태도이다.

순례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숙박 요금도 없다. 
저녁 7시 15 분에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 

내일 아침 6 시에도 간단한 식사가 제공된다고 한다. 그리고 알아서 도네이션 하라고 한다. 이 같은 일은 처음이다.

저녁에 50여명이 식당에 모였다. 
인사대신 각자 이름과 나라만 말하라고 한다. 
자기나라 스페인 분들이 가장 많다. 
다음 프랑스, 그리고 미국, 뉴질랜드, 독일, 이태리,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등지 에서 온 분들이다. 

한국사람도 7 명이나 되었다. 한국인은 모두 아직 젊은 20-30대 들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은 60 대 이상 분들도 많은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에서 온 84세 조지 할아버지는 여기 묵지않고 6 Km 더 걸어야 하는 마을로 가셨다. 
감탄할 일이다. 

이번이 세번째로 걷는다니 놀랄 일이다. 

기회가 온다면 한 번 더 걸을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그를 걷게하는 것일까? 

'걷는 것은 자기 인생과 세계를 확장시키는 일이다'는 말이 생각 난다.
맛있는 야채 참치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이어서 밥 한 냄비와 빈(작은 콩) 스프가 나왔다. 
둘을 섞어 먹었다.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는 수박이 나왔다. 

식사하는 동안 내내 남자 세사람이 즐겁게 봉사한다. 
감사했다. 

친절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그들의 봉사하는 모습 속에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들이 떠 올랐다. 
여러 모양으로 수고하는 우리 집사님들이 고맙다.

신중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는 한 봉사자 얼굴 속에 승중 형(김 모세 YWAM 선교사) 모습이 떠 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오랜 세월 그런 모습으로 변함없이 주님을 섬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동역하는 형수님은 건강하실까?

안부도 못 물어본 채 또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미안한 마음이 들고 눈가에 물이 젖는다.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식사 후 설겆이를 약간 도왔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적당한 도네이션을 했다.




제20일 (10월 1일 화요일) 
베르시아노스에서 렐리에고스까지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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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비가 오고 바람부는 길을 걸었다. 

아침 여섯시 반에 판초를 뒤집어 쓰고 출발했다. 어두운 길이다. 
아내 아이폰으로 다운로드 해 온 후랫쉬로 앞을 비추었다.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길에 불빛이 고마웠다. 혹시 아이폰에 물이 스며들까 염려되어 판초로 감싸고 걸었다. 

아이패드도 판초 안 앞 자켓 안에 넣고 찬양을 계속 들었다. 
말씀은 예레미야 33장까지 들었다.

여덟시 반쯤 되니 앞길이 분간이 된다. 

비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나나 집사람이나 평생 빗속을 가장 많이 걸은 며칠이다. 
지난 토요일 부터 내린 비가 간간이 그치고 햇빛이 나기도 했지만 오늘까지 나흘간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제법 센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걷는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도시에 살고 있으면 사서 이런 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장을 떠나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시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고맙고, 여기 길을 걷고 있는 우리도 감사하다. 

모두에게 각자 맡겨진 하루 하루를 끊임없이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성공과 실패가 어느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말인가?

도시의 성공과 실패는 생산성으로 결정된다. 

여기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product) 이 없는 것인가?  
걷는 사람에게 꿈과 상상력은 무형의 특허 자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몇 분을 모시고 참고 견디면서 목회하고 있는 신실한 실력있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본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위로 또는 동정은 교만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이 넓은 하늘 아래 세상에서 성취란 무엇이냐? 

각자 자기 길을 택하여 걸으며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라도 '목회 성공 지상주의' 라는 단어는 입에 달지 말고 장사지내 버려라.
산티아고 길에 마을마다 우뚝 솟은 성당들이 있다. 

들어 가 보면 감탄할 만한 중세기념물들이다. 

부르고스 산타 마리아 성당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인걸(사람과 인물)은 간데 없다. 

인물도 성취도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가의 손에 알렉산더, 씨이저, 나폴레옹등 몇사람만 복원될 뿐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메세타 거친 광야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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