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린북'에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연주 장면
1960년대 미국 땅에서 흑인의 인권은 형편없었다.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버스도,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던 차별과 분리의 대상이었다.
당시 인종차별 현실을 보여주면서 백인과 흑인 사이 견고하게 쌓인 오해와 선입견을 허문 특별한 우정 실화가 로드무비에 담겼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시대적 편견과 오해에 대해 묵직한 느낌표를 던지는 영화, 바로 ‘그린북’이다.
영화 속 시대적 배경, 만연했던 흑백 갈등
영화의 배경인 1962년의 미국은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젊은 대통령으로 불린 존 케네디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이다.
1963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리더로 한 흑인인권운동이 미 전역에 일어났고, 미국 내 흑인 역사박물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인종이나 성별 문제가 나아지지 않았다.
1865년 법적으로 흑인 노예 해방이 선언됐지만 여전히 흑백분리정책이 활개를 쳤다.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특정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못했다.
흑인을 천대했던 시대상이 영화에 낱낱이 드러난다.
영화제목이기도 한 ‘그린북’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이었다.
백인 동네에 간 흑인들이 괜한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 가능한 숙박 시설, 레스토랑 등의 정보가 담긴 이 책에 따라야 했다.
영화에서의 ‘그린북’은 흑과 백을 분리한 당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허풍쟁이 운전사의 실화
영화에는 2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한 명은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다.
그는 흑인이라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백악관에 초청되는 등 음악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반면 토니 발레롱가는 이탈리아계 백인으로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가는 나이트클럽 경비원이다. 그는 교양 없는 말투에다 돈 내기, 힘 자랑을 좋아한다. 클럽이 새 단장을 위해 몇 달간 휴업에 들어가자 집안의 가장인 토니는 돈을 벌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때 들어온 새 일자리가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닥터 셜리를 모시는 운전사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피부색 뿐 아니라 사회적 위치까지 다른 두 사람이 인연이 돼 8주 동안 흑인의 차별대우가 만연했던 딥사우스로 순회공연을 함께 떠난다.
그러면서 서로 간 오해와 편견이 깨지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특별한 우정 이야기가 탄생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후 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상찬을 받았다.
자칫 무겁고 우울할 수 있는 소재지만 의외로 유쾌하다는 평을 받으며 최근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코미디 영화 연출감독으로 유명한 피터 패럴리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했으며, 그는 수상 후 “타인을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소감을 밝혀 박수를 받았다.
이 영화는 남우조연상 각본상까지 거머 쥐어 3관왕을 기록했다.
전미비평가협회로부터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에 관한 호평과 달리 몇 가지 논란도 미국 현지 내에서 불거졌다.
영화 ‘그린북’의 실존 인물의 아들이자 각본을 쓴 닉 발레롱가(61)가 과거 무슬림에 대해 혐오발언한 것이 뒤늦게 조명돼 비난을 받았다.
닉 발레롱가는 2013년 사망한 돈 셜리가 생전 “내가 죽은 뒤 영화를 만들라”고 주장했지만, 셜리의 유족은 고인으로부터 영화제작 허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 사실도 전해졌다.
또한 돈 셜리의 성 정체성 이야기가 영화에 거론되는 것이 꺼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문화계 전문가들은 여전히 인종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이 시대 속에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음을 강조했다.
오길영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는 “다소 뻔해 보이는 인종차별 고발 영화가 아니라, 개별적 인물들의 삶과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고, 동시에 이들이 품고 있는 정감의 고유성을 전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영화 ‘그린북’은 인종 차별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하고, 어디에 사는지 등으로 상대를 대하는 편견과 오해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위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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