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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론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삶의 마지막 날’을 떠올린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 말했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죽음은 영원한 세계를 여는 황금열쇠’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을 삶의 모멘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죽음을 거친 뒤 부활해 지상명령을 전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죽음은 선물이다

누구나 죽음을 의식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우린 지금 이 순간에도 늙고 있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발표한 ‘생명나눔 인식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79.2%는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죽음 준비에 대해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굳이 준비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36.8%로 가장 높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은 24.8%에 그쳤다.
사후세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떨까. 

20여년간 말기암 환자를 돌본 샘물호스피스선교회장 원주희 목사는 신앙인 역시 평소 죽음을 생각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히 9:27)’이란 성경 말씀이 있음에도 대부분 개인의 종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면서 “그래서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리는 등 죽음에 가까워지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분노하고 슬퍼한다. 

이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보지 말고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종교학자인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는 “삶의 끝을 마련한 것은 인생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죽음 준비할 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을 때 남은 삶을 충실히 살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싸나토로지스트(죽음교육 전문가)를 배출하는 임병식 한국싸나토로지협회 이사장은 죽음 준비로 신앙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죽음을 앞둔 이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자연히 알게 된다. 

쓸데없는 집착을 제거하기 때문”이라며 “사도 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고 말했듯 신앙인도 집착과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본성대로 살 때 신앙이 깊어지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 역시 죽음을 인식할 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죽음이 삶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자기반성과 변화”라며 “죽음을 앞둔 이라면 누구나 원수를 용서하고 분노를 풀고자 한다.

또 이로 인해 인생을 성찰하고 죄를 회개하며 이웃을 돌아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교회에서는 죽음 준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은영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은 “우리 모임이 올해로 23년 됐지만 교회에서 교육 요청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인학교나 사회복지센터가 대부분”이라며 “잘 죽는 것은 결국 잘 사는 것이다. 

교회가 막연히 사후세계에 대해 말하기보다 이웃을 돌아보는 법을 가르친다면 성도의 영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목사 역시 교회가 죽음 준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 곧 죽을 거라 생각하는 성도들에게 기독교는 죽음과 부활의 종교임을 일깨우는 것 또한 목회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원 목사는 “교회가 삶과 성공만 말해 성도가 이웃을 돌아보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성도가 올바른 죽음관을 바탕으로 죽음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목회자가 삶과 죽음을 균형 있게 설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죽기 전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엔딩노트나 유언장 쓰기를 권했다. 

송 목사는 “죽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 전에 사전의료·장례의향서나 유훈 등을 엔딩노트에 적는다면 자기성찰뿐 아니라 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죽음 준비의 방법으로 ‘사회봉사’를 권했다. 그는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면 삶의 소중함은 절로 배우게 된다”며 “나눔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했다. 

죽음 준비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바로 지금 여기서’ 잘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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