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광복절 기념 '교회의 재건과 건국활동' 기획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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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옵는 이승만 대통령 각하…국기배례(拜禮)는 일제의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숭배이며….”
1949년 초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허리를 굽혀 국기에 대해 예를 표하는 국기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청원서(사진①)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듬해 정부는 오른손을 왼편 가슴 위에 대는 방식으로 국기에 대한 예절을 바꿨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계가 지닌 위상과 권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적인 예다.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 한동인)은 광복절인 15일부터 기획 전시회를 연다.
주제는 ‘해방의 기쁨 분단의 아픔-교회의 재건과 건국활동’이다.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당시 한국교회의 활동상을 반추하면서 오늘날 교회가 나아갈 길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개관을 이틀 앞둔 13일 기독교역사박물관 상근 연구원인 최태육 목사와 함께 전시실을 미리 둘러봤다.
전시실에는 해방 후부터 6·25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약 5년 동안의 한국교회 및 교계 인사들의 활동상이 담긴 사진과 신문, 잡지, 단행본 등 68점이 전시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고 한경직 목사의 설교집(1945∼1950) ‘건국과 기독교(1949년)’를 비롯해 조선기독청년회전국연합회에서 발간한 ‘위대한 건국(1947)’, 고 김재준 목사의 ‘기독교의 건국이념(1945)’등이 눈에 띄었다. 해방 후 ‘건국’이라는 민족적 당면 과제를 앞에 두고 기독교 정체성을 지닌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회자들과 교계 단체의 목소리였다.
한 목사는 설교집에서 “기독교는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건국관이 뚜렷했다.
장로 교단에서 고신 측이 떨어져 나오는 단초가 됐던 ‘고려파 성명서(1947년)’도 볼 수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경남노회 안의 ‘친일세력’을 척결하고 새로운 노회를 조직하자는 호소문이다.
이후 출옥 성도(사진②) 등을 중심으로 고려파가 형성됐다.
이 즈음, 감리교는 교회 재건과정에서 복흥파와 재건파로 분열되는가 하면 김재준 목사와 박형룡 목사 측은 성경해석 차이로 분열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인 노마리아(사진③·왼쪽)의 모습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독립운동가였던 유관순의 사촌 올케이면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노마리아는 백범 김구의 권유로 해방 후 대구에서 전국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1949∼1953)으로 활동했었다.
미국 연합감리회 선교부가 1948년 5월에 발행한 선교잡지 ‘세계의 전망(World Outlook)’에 실린 사진도 눈길을 붙잡는다.
신작로에 30㎝ 높이로 막대기를 걸쳐 놓은 38도 경계선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미군의 모습(사진④)이다.
기독교역사박물관 부관장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해방 후 한국교회가 펼쳤던 건국활동과 교회가 겪었던 분열과정은 사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이 과정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향후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선교방식에 대한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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