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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담임>


성경에는 여자집사의 자격에 관해서도 자세히 말해 놓았습니다.

"여자들도 이와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말며 절제하며 모든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딤전 3:11)

여자 집사의 자격은 첫째, 단정해야 합니다.

먼저 언어가 춤위있어야 하고 외모와 행실과 성품과 양심까지 단정하여 안팎이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에 많은 여자 성도가 있지만 주의 일에 중요하게 쓰려고 품행과 언행심사가 단정한 사람을 찾아보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 맡기면 야단스러울 것 같고, 저 사람에게 맡기면 품위가 떨어질것 같습니다.

또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축복된 일을 수종 들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데 여러 방면으로 찾아봐도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단정한 인물이 드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일을 해 낼만큼 성도들이 자신을 품위 있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목사인 제가 해야할때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요긴하게, 어디에든 백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단정한 품위를 지닌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사람이 참 적습니다.

주의 일에 충성하는 자는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직분자로서 어떤 품위를 갖춰야 할지를 말해 놓았습니다.

또 성경이 말하는 품위가 없는 사람에게는 직분을 맡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자 집사로서 춤위를 갖추려면 단정해야 하고, 말씨가 거칠어도 안되고, 남에게 상처를 줘서도 안 됩니다.

행동이 우락부락해도 안되며, 감정이 사나워도 안되고, 감정기복이 심해도 안됩니다.
너무 가벼워도 안되고, 아무데서나 깔깔거려도 안됩니다.

어디를 가나 그 자리에서 상당한 위치를 지킬만큼 인격이 형성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정도로 단정하고 품위있는 사람, 한마디로 모든 사람에게 침찬듣는 사람을 여자 집사로, 직분자로 뽑아야 합니다.

둘째, 참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개는 이렇고 아무개는 저런데 우리 목사님은 왜 그런 사람들을 내버려 두시는지 몰라?" 하며 비판하고 헐뜯는 행위가 참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다른사람을 참소하면서도 이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들이 참소를 많이 합니다.

목사가 어떤 성도만 인정해서 직분을 많이 맡긴다는 둥 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여 참소합니다.
목사에게는 어느 성도든 다 똑같이 목숨걸고 사랑할 대상인데 목사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말합니다.

참소하는 자체가 마귀역사이기 때문에 참소하는 일에 사용당하는 그 사람도 참소한 죄와 마귀역사로 인해 망합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교회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참소하는 말이 자기 입에 오르내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참소하면 참소한 그 사람때문에 모임에 분란이 일어나고 정용적이고 마귀적이게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할수 없게 됩니다.

참소하는 자 마귀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합니다.

성경에 참소하는 자를 하나님 앞에서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계 12:10)
하나님께 쫓겨난 자가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마귀가 취후에 쫓겨 갈 곳은 지옥입니다(계 20:10).
마귀에게 혀와 생각을 장악당해 참소하는 자가 직분을 맡으면 하나님 일을 훼방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를 장학한 마귀와 함께 그도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소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직분을 주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은 성도수가 많아서 담임목사가 성도의 속사정을 일일이 들어주지 못하지만 연희동, 망원동, 노량진 성전 시절만 해도 성도들이 목사에게 자주 찾아왔습니다.

와서 아무개가 이러고 저러고 해서 속상하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그사람이 정말 네게 그렇게 말했니? 그런데 그사람은 네가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고, 인격적으로 이러이러한 점이 훌륭하다고 말하더라. 너는 그사람을 미워하지만 그사람은 너를 칭찬하더라" 그러면 그 사람이 목사님 죄송합니다"하고 갑니다.

참소하는 인격과 칭찬하는 인격이 비교가 되느냐고 강변하더니 더는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상대가 백번 야단 맞을 일을 했어도, 한번 칭찬받을 일을 가지고 칭찬받을 사람이라고 대접하면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들이 참소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맡긴 영혼을 사랑하는 사역에 전념하다가 죽으라는 것이 바로 직분입니다.
그 직분의 모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사랑해야할 성도끼리 서로 참소하니 분쟁이 일어납니다.

지역모임에서도 분쟁, 구역모임에서도 분쟁, 만나는 사람마다 분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다 마귀가 참소하기 때문입니다.

마귀 일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요, 마귀의 졸개입니다.

그런데 마귀와 함께하면서 참소하고 참소당하는 것도자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직분을 감당하겠습니까?

그것도 모르면서 귀한 직분을 맡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주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방해하려는 악한 마귀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충성을 방해하는 악한 마귀와 벌이는 영적전쟁입니다.

직분자의 생각  속에서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가 온갖 궤계를 부리고 있습니다.
단정하지 못하도록 흐트러지게 하고 서로 참소하게 하고 성령의 원수인 정욕으로 살게 합니다.
마귀는 이처럼 온갖 수작을 부려서 직분자를 자기 앞잡이로 쓰고 있습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에게 생각을 빼앗겨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 바싹차려서 단정하지 못하게 하고, 참소하게 하고, 절제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역사를 이겨야 합니다.   <계속>

<연세중앙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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