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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안 목사 (전 나사렛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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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4월은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산철쭉 벚꽃 유채 영산홍 자목련 수선화 등 아름다운 꽃들로 수놓아져 있다. 

하지만 1960년 봄은 청년들의 함성과 경찰들의 총성으로 땅과 하늘이 비통하였다. 

4·19 학생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자유민주주의 정기가 바로 세워졌으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마음 한 곳이 부끄럽고 슬퍼진다. 왜 그러한가.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왜 4·19 시민혁명이 아니고 학생혁명인가. 

프랑스와 필리핀 같은 나라들은 학생이 아니라 시민혁명이지 않았나. 

두 번째는 학생들보다 교수와 교사들이 먼저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행동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세 번째는 사회 지도자들과 성인 시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자녀들이 총알을 맞고 생명을 잃기 전에 부모 세대들이 사회정의와 책임 철학 속에 왜 먼저 행동하지 않았는가. 

네 번째는 종교 지도자들은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하였는가. 

다섯 번째는 최소한 1948년 8월 15일부터 1960년 4월 19일까지 약 12년 동안 이승만 대통령과 동고동락한 정치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끝까지 개인과 가문의 부귀영화만을 위하여 처신하였는가. 

여섯 번째는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망한다"고 절규한 청년 이승만은 1898년 11월 한성 감옥소에 수감 되던 시점부터 애국애민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인간 이승만은 왜 하야로까지 치닫게 되었는가. 참으로 부끄럽고 슬프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생각은 나라가 위기에 봉착할 때 절대로 재연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수시로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는 나라와 어느 대통령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무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성 감옥에서 성경을 읽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중생한 후 일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최소한 이승만 대통령과 4·19 학생혁명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한다. "나는 쇠하고 예수는 흥하여야 하리라"는 세례요한의 심정이 지금의 성직자들에게 있는가. 

성직자 명분으로 대통령을 오만하게 대하지는 않은가. 

가롯 유다와 베드로처럼 감정적으로 대통령을 판단하지는 않은가.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인처럼 극단적으로 교리에 갇히고 정치와 타협하며 세상을 등지고 있지는 않은가. 

대통령들의 하야 시해 자살 수감 탄핵 등과 같은 역사 속 참혹한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할 때다. 

또한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다.

◇임승안 목사는 현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석좌교수로 있으며, 성경 말씀과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하여 '섬김을 위한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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