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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속에 맴도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세기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가 작성한 ‘평온을 비는 기도’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우리에게/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이 기도문은 특히 지금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소식을 접하면서 떠올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란 세상의 복잡한 소식 앞에서 숨어 있거나 모른 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을 놓고 ‘말세’의 징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를 가리켜 그 모든 시대를 마지막 때라고 넓게 말하고 있습니다.(행 2:16~21) 

때와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우린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늘 깨어있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 일을 두고 또다시 선동적인 설교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들을 주의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도리어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딤후 1:7)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이번 사건과 연결해 본다면, 확실한 악을 악으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멈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고 봅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에서 저지른 일은 분명한 악이었고 테러였습니다. 

여성들과 아이들을 비롯해 평범한 이스라엘인들을 끔찍하게 죽였고 인질로 잡아갔습니다. 

성경은 이런 악과 싸우기 위해 정권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롬 13:1~3)

그러나 정의가 없는 권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사 1:16~17) 

특히 약자들이 빠져있는 곤경을 무시하면서 보복하는 일이란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모두를 집단 처벌하려는 모습은 너무나도 개탄스럽습니다. 

불타는 보복의 감정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쟁의 원칙으로 일이 진행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번 전쟁의 경우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섭리와 국가의 책임(전쟁)론 사이에서 통찰력을 가져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곳의 모든 전쟁이 속히 끝나고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입장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그곳의 악한 무장단체와 그런 세력을 키우고 있는 독재 세력이 뿌리째 뽑힐 수 있기를 기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신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언젠가 “온 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6, 롬 11장 전체 참고)는 말씀이 있기에, 이스라엘 국가를 우선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으니(롬 3:21~24) 우리의 마음이 유대 이스라엘 쪽으로만 기울여져서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긴장감 가운데 우리가 분명히 붙잡아야 할 지혜는 성경의 결론이라고 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오늘의 안타까운 소식과 그로 인한 복잡한 생각 가운데 평온을 비는 기도를 묵상하면서 마음을 달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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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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