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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2004년 최연택 기자가 세상을 떠난 그해, 회사는 창사 5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CBS 창사 50주년 공연기획팀장이었던 나는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복도 여기저기에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홍보활동, 티켓판매, 그리고 공연 연출준비로 숨쉴틈이 없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출연시키고, 많은 이들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 좋은 문화 콘텐츠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CBS 의 역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설교방송을 열심히 보던 최연택 기자의 살아생전의 모습이  일하는 중에도 자꾸 떠올랐다.


연택이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계속되는 고통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매일 CBS TV 설교방송을 보고 있었다.



"또 설교방송을 보는구나"


"응, 처음엔 좀 어려웠는데 조금씩 이해가 돼."


"다행이네."


"형 덕분이야. 형이 CBS에 없었으면 이 설교방송도 몰랐을 텐데, 많이 고마워."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을때에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CBS 설교방송을 보고 있었던 연택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CBS에서 일한지 16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나는 설교방송에 그다지 관심을 쏟지 못했다.

기독교 방송국이니 설교방송은 으레 해야하는 일중에 하나로만 치부했었다.


하지만 연택이가 CBS 방송을 유일한 기쁨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서 CBS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 몸담고 있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하며 돌이켜 보게 되었다.

CBS 에 입사하여 음악방송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했던 나는 방송 PD로서 이일을 좋아했고, 수많은 대중음악 가수들과 즐겁게 교류하면서 지냈다.


평생을 음악방송 PD로 산다고 해도 별로 부족함이 없었고, 더이상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살아온 삶이었다.


음악방송 PD로 보낸 10여년의 새월이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고, 돌이켜보면 힘든일도 있었지만 기쁘고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 삶 속에 뛰어든 후배 최연택 기자 사건은 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나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오랜시간 통절히 기도해 본적이 있었을까?

연택이의 집으로 심방 가던 그날부터 그가 세상를 떠나던 그날까지 단 하루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두 달이 넘는 동안 연택이의 회생을 기도하며, 그의 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음 아파하며 기도를 끊이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때같이 연택이에 심방을 가려고 목동 사옥을 출발하여 부천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다시 일산으로 달리는데, 차안에서 목사님이 문득 이런 말씀을 내게 던졌다.



"용길아, 너는 장닭이 아니라 독수리다. 하나님이 너를 독수리로 만드셨다. 음악 PD로 사는 것 이상의 사명을 주셨지. 그것이 너를 CBS로 보낸 궁극적인 뜻이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음악방송 PD로 인생을 마치라고 너를 CBS에 보내신게 아니다. 한국교회의 변혁과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데 너를 부르셨다는 말이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독수리라뇨. 저는 장닭입니다. 장닭! 제게는 한국교회의 변혁이나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려는 원대한 꿈과 계획이 없어요. 그저 좋은 음악 프로그램 제작을 통하여 청취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멋진 음악회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아티스트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독수리라니.


주일학교 때 선생님으로 뵈었다가 목사님으로 다시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내 안에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지고, 다시금 믿음 생활이 뜨거워 지고 있었지만, 목사님의 말씀대로 '한국교회의 변혁과 같은 묵직한 주제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기독교 방송국에서 일하지만 그저 음악이 좋고 공연이 좋고 방송이 좋았다.


내심 목사님께서 나를 아껴서 격려의 말씀이겠거니, 라고 치부하며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후로도 같은 말을 두고두고 반복하였다.


연택이 때문에 경황이 없을때에도 자주 거론하였고, 주일에 교회에서 만날때에도 종종 그 말씀을 꺼내곤 하였다.


그럴때 마다 나는 그 말씀을 새겨듣지 않아고, 귀 밖으로 흘려 보냈다.

내게 그런 사명이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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