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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언론통폐합 유탄을 맞고 이곳 LA에 떨어져서 호구지책으로 우선 일간지 기자로 일할 때 나는 임동선 목사님을 만났다. 


1980년대 초였다. 그때는 동양선교교회가 한창 잘 나가던 때였다. 


교회에 나가던 안나가던 임동선 목사님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언론계 선배 한분이 그 교회 집사였는데 한번은 자기 집에 임 목사님이 심방 오신 애기를 전해 주었다. 


심방 예배 중 네 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이름을 꼬박꼬박 열거해가며 기도해 주시는 바람에 그때부터 임 목사님에게 뿅 갔다는 것이다. 


임 목사님이 은퇴할 때까지 그 선배는 동양선교교회의 충성스러운 교인이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임 목사님은 어느 집에 심방을 가던 그 집안에 거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손자, 증손자까지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간다고 들었다. 


대형교회 담임 목사님이 어디 우리 아이들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겠지 생각하고 있던 교인들에게 임 목사님은 한방에 그런 감동을 선사하곤 하셨다. 


그 분의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는 한국에서의 그 잘난 신분을 다 내려놓고 고단하고 서럽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충분했다. 


동양선교교회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1989년 서울 ‘월간목회’ 발행인 박종구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나는 ‘미국의 8대 한인교회’란 책을 펴냈다. 


그때 박 목사님과 상의하여 미국의 8대 한인교회로 선정한 교회들은 나성영락교회(김계용 목사), 나성한인교회(김의환 목사), 시카고제일연합감리교회(조은철 목사), 뉴욕한인교회(차원태 목사), 나성빌라델비아교회(조천일 목사), 순복음뉴욕교회(김남수 목사), 워싱턴 제일한인침례교회(이동원 목사), 그리고 동양선교교회(임동선 목사)였다.


그때는 기자생활을 접고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M.Div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나의 처녀작이었던 그 책 1천여 권을 임 목사님이 선뜻 사주시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신학교 한 학기 등록금을 해결한적 있다.


 물론 신학생 격려 차원이었다. 


임 목사님은 그렇게 한인교계의 ‘큰 손’이셨고 가난한 신학생들,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돕는 일에 인색함이 없으셨다.


기자하면 어디에선가 느껴지던 거만함, 속에 들은 것도 없이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속물근성이 엿보였는지 목사로 변신한 나를 만나기만 하면 “이젠 기자 모습 거의 탈색되고 목사 모습이 보여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임 목사님은 수많은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설 때마다 생생한 교훈을 전해주셨다. 


그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우선 목사는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셨다. 설교원고를 준비해서 달달 외운 다음에 강단에 서서는 그 원고를 무시해 버리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외치라고 하셨다. 


또 하나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그 분은 서슴치 않고 이런 말씀도 하셨다.


 “여러분, 사람을 믿느니 개를 믿으세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어디 그분이라고 목회가운데 시련과 고난이 없었을까? 그래서 하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세계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시고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하며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그래서 임 목사님이 은퇴 후 세운 대학도 이름이 ‘월드미션대학교’였다. 


9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 지난달 남미 선교여행을 다녀오실 만큼 세계선교에 대한 그 분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분을 두고 ‘동양의 사도바울’이라고 말했다.


이민자들을 받아주고 이곳에서 우리 모국어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고 있는 이 나라 미국을 위해서 우리는 늘 빚진 마음을 갖고 1등 시민으로 살아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공항 화장실에 가면 어지럽게 바닥에 널려 있는 휴지들을 손으로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한 적이 있다는 일화를 전해주면서 그게 이 나라에 빚을 갚는 마음이요 1등 시민으로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런 큰 어른 임동선 목사님이 별세하셨다. 


한때 남가주 한인교계 4인방으로 불리던 네 분의 목사님, 나성영락교회 김계용 목사님, 나성 한인교회 김의환 목사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이제 임 목사님도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남은 분은 나성빌라델비아교회 조천일 목사님 뿐이시다. 


4인방이란 부정적인 뜻 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힘을 모아 이민교회를 보호하는 네 기둥이란 뜻에서 긍정적인 말로 통했다. 


그 4인방의 영적 리더십 때문에 LA한인사회는 덩달아 함께 발전해 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 네 분들이 눈물과 기도로 세운 대형교회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존경하는 임 목사님, 목사님의 빈 자리를 누가 메울 수 있을까요? 다만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집 제목처럼 ‘이 시대의 소망은 오직 복음’이란 말씀을 우리시대에 주시는 마지막 유언으로 받아 복음으로 소망을 삼는 세상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이제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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