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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느닷없이 ‘아메리칸 아이돌’로 뜨고 있다. 2월 6일은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
그날이 24회 수퍼볼과 겹치긴 했어도 수퍼볼이 열리는 텍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그의 라이브러리가 있는 시미 밸리에서, 그리고 워싱턴에서 기념 행사들이 열렸다.
‘딴따라’ 출신 대통령이라면서 사람들은 그의 정치역량을 크게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딴따라 출신 주지사였던 슈와즈네거도 불경기로 가주 경제가 바닥이 나는 위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소환은 고사하고 그런대로 무난히 임기를 마쳤다.
교계에서도 연예인 출신 목사들이 많다. 그저 딴따라 출신이라고 한자락 깔아뭉개기 일쑤지만 오히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입 1차, 2차에서 밀리다가 우물쭈물 신학교로 몰려가서 적당히 졸업장을 딴 후에는 곧장 전도사, 목사가 된 것을 가지고 자기는 ‘정규 육사’ 출신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목사들보다 훨씬 목회를 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전문 정치인보다는 딴따라 출신 레이건 대통령이 그들보다 훨씬 더 좋은 정치를 펼쳤다는 평가가 죽은 후에 비로소 공론화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버락 오바마에 맞설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공화당으로서는 레이건이란 이름으로 정치적 바람몰이를 시도하려는 속셈이 없지 않을 것이다. 미트 롬니, 허커비, 새라 페일린, 또 뉴트 깅그리치까지 누가 오바마와 맞짱 떠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공화당은 그렇다치고 오바마 까지도 ‘닮고 싶은 모델’로 칭송하고 나서는 판국이 된 것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레이건 향수에 빠져드는 이유가 단지 그의 탁월한 정치 지도력 때문이었을까? 물론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며 소련을 압박해서 마침내 냉전을 종식시키고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부흥 미국’을 건설하면서 위대한 소통자, 온화한 근본주의자로서의 정치적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 말고 또 하나가 있다. 정직하고 검소했던 그의 인격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남달리 그를 존경해 온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난달 PBS-TV를 통해 그가 생전에 그처럼 좋아하던 개인 목장, 산타 바바라의 랜초 델 시엘로(Rancho del Cielo)를 소개하는 다큐멘타리를 시청하고 난후에 “레이건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어?” 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는 계기를 만났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두 번이나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백악관에 입성한 그의 화려한 정치 경력에 비하면 그의 이 별장은 화려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청렴하게 느껴질 만큼 단출하고 소박했다.
고르바초프 부부와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 그리고 대처 수상이 이곳 랜치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 식탁은 우리네 6인용 식탁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한 나무 테이블이었다.
센트럴 난방 시스템이나 냉방 시스템은 어림도 없고 리빙룸이나 베드룸 역시 지극히 서민적으로 보였다. 이런 곳에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고르바초프를 초대하여 만찬을 가졌다고?
레이건은 이 랜치에서 낸시 여사와 호스 라이딩을 즐겼고 잔디를 깎고 나무를 자르는 일등을 거의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세계 최 강대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삽과 전기톱, 곡괭이를 들고 일하는 평범한 캘리포니아 농부에 불과했다. 결코 돈 많은 부자가 아니었다.
그가 재물에 욕심이 있었다면 돈을 꼬불칠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대통령 재직시 세계 국가 원수들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들은 레이건 라이브러리에 고스란히 모아 놓고 사회에 환원했다. 지금까지 돈세탁을 해서 어디 감춰둔 비자금이 있고 스위스 은행 비밀구좌에 묻어둔 돈이 발각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겉으로는 화려했을지라도 나라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 온 저 검소한 인격! 그래서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나는 전혀 다른 눈으로 그를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돈 앞에 무너져 내리는 목사, 돈 앞에 흔들리는 지도자, 돈 앞에 무릎 꿇는 장수 . . .
맘몬의 위력 앞에 도도하게 자신을 지키며 시대 속에 참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가난한 지도자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열망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빈손’이라 불리던 한경직 목사님, 추기경이란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민망할 정도로 소박하게 사셨던 김수환 추기경, ‘길상사’란 굴러 들어온 재산조차도 마다하고 무소유를 행복으로 여겼던 법정 스님. . .  우리 후세들은 지금도 왜 그들을 그리워하는가? 결코 돈 앞에 흔들림이 없었던 그들의 꼿꼿하고 성별된 자존감 때문이 아니겠는가?
황금을 보면 이게 웬 떡이냐가 아니라 이게 웬 돌덩이냐고 중얼대는 ‘최영장군 물질관’이 지도자의 덕목이 되어야 하려만 영적인 지도자들까지도 왜 그것 앞에 맥을 못 추고 추하게 타락을 일삼는가?
레이건을 되돌아보며 한번 짚어 볼 우리들의 부끄러운 아픔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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