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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카다피가 죽었다. ‘아랍의 봄바람’에 42년 철권통치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수챗구멍에 갇힌 채 손에 쥔 그의 황금권총도 무용지물이 되어 결코 그를 지켜 주지 못했다.
북한의 김정일, 베네주웰라의 우고 차베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그리고 무아마르 카다피를 지구촌의 ‘반미 4형제’로 꼽는다면 그 4형제 중 제일 먼저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한 꼴이 되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리자, 리자, 그대는 아프리카 프린세스!”라며 추근대던 일은 그의 변태기라고 해두자.
처녀 미녀만 골라서 경호부대를 조직하고 장신구처럼 여기저기 달고 다니며 호기를 부리던 모습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미친 짓이라며 애교로 봐주면 된다.
그러나 그의 소행으로 세계가 다 짐작하고 있는 팬암(PanAm)기 폭파로 270여명이 공중분해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집단 살육이다. 민주화를 주장하는 자기네 백성들에게 전투기를 띄워 폭격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라면 과연 정신이 온전한 인간의 소행이랄 수 있을까? 그래서 유엔과 나토가 리비아 상공을 비행 금지구역으로 선포하여 무자비한 집단 살인을 막아 낸 것이다.
리비아 전역에서는 카다피 집권 중 희생된 민간인들의 시신이 여기저기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트리폴리의 한 창고에서는 불탄 시신 53구가 발견되어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겨 주었고 트리폴리 인근 한 교도소에서는 유해 1,270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과도 국가위원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생자를 합치면 카다피 집권기간 동안 민간인 학살자가 2,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은 그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부르기를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 그것도 자기나라 백성 따위는 파리 목숨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은 파리 목숨 취급을 당한 불쌍한 민초들에 의해 무참하게 처단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에게서, 그리고 이번 카다피에게서 실감나게 이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지금 시리아나 예멘의 독재자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꽃같은 청춘들에게 툭하면 무차별 발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카다피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기가 차고 놀라운 일은 카다피의 사망과 관련하여 터져 나온 수많은 뉴스가운데 그 흉악한 반인륜적 독재자가 인권상을 수상했다는 보도였다.
인권상? 그 자에게 누가 인권상을? 그렇다. 그것도 비스 무리한 아프리카 미개한 나라의 독재자들끼리 주고받은 상이 아니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한 진보단체가 그에게 인권상을 수여했다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또라이 집단의 개그 콘서트도 아니고 카다피에게 다른 상도 아니고 인권상이란 이름으로 상을 주었다니 놀랍기보다는 허무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수가 없었다.
지난 2003년의 일이다. 한국의 불교 인권위원회라는 진보단체는 동국대학교 상록원에서 카다피에게 제9회 불교 인권상을 주었다고 한다. 상을 받은 이는 카다피를 대신하여 주한 리비아 대사가 상을 받았다.
이게 개그 콘서트가 아닌 것은 불교계의 높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대학의 총장,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 인권위원회 위원장이란 고위 공무원까지 배석한 것을 보면 이건 그냥 웃자고 한 것이 아니라 ‘베리 시리어스’하게 상을 준 것이다.
선정이유가 근사하다.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 지도자는 자유, 정의, 평등의 대의를 지원하기 위해 수행해 오신 선구자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고귀한 성품에 대한 찬사와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주창하는 휴머니즘적인 사상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민족과 민중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한 지도자라는 점에서 카다피 국가 원수를 불교 인권위 심사위원들 만장일치의 결의로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했다.
평생 반미의 선봉에 서서 사람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고 살아가던 고약한 카다피가 아무리 이뻐서 환장했을지라도 그에게 다른 상도 아닌 인권상을 줬다는 사람들의 심보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성이란 걸 어디다 팔아먹은 사람들 같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대한민국 언론은 이런 해프닝을 그냥 구경하며 즐기고 있었고, 오피니언 리더 축에 끼는 지식인들도 눈먼 장님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단 말인가? 리비아 건설현장에서 수주도 얻고  밀린 공사대금 받아내기 위해 카다피의 눈치를 살펴온 대한민국일지라도 이건 국가 정체성에 있어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의 이미지에 엄청난 역효과로 작용했으리라.
진보를 해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진보가 되자. 사람의 목숨을 존귀하게 여기는 우리 가슴에 진보의 피가 따로 있고, 보수의 피가 따로 있는가? 반미를 할지라도 양아치 수준의 저급한 반미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논리로 접근하는 건강한 반미여야 과연 미국이 겁먹지 않겠는가?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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