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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남가주 교협이 일일식당을 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작은 교회 목회자 자녀들 47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격려하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의 사랑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흐뭇한 ‘사건’이었다.
일일식당이 열린다고 해서 나도 ‘다호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민종기 교협 회장님과 변영익 부회장님 등 여러분이 식당 문 앞에 서서 손님들에게 머리 숙여 환영하고 있었다. 10불 짜리 점심 한 끼 때우러 오는 손님들인데 크게 감사할 일도 아니고, 납작 엎드려  영접할 만큼 높으신 분들도 아닌데 교협 임원들은 한없이 겸손한 모습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 넥타이에 정장차림을 하고 식당 앞에 서서 밥을 팔아 돈을 모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작은 교회 목회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목적 때문이었다.
된장찌개를 시켜 먹으며 생각해 보니 사실 저분들도 담임하고 있는 개체 교회에 가면 “목사님, 우리 목사님”으로 존경받는 목사님들이고, 당회장님에다 남가주 교회들을 대표한다는 남가주 교협 회장, 부회장이 아니던가? 사실 입장을 바꿔서 날보고 저런 일을 하라면 나는 과연 저런 봉사활동을 해 낼 수 있을까? 아마도 “제발 살려주세요!” 엄살을 떨면서 분명 도망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일식당해서 자기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게 아니고, 기분 좋게 어디 부부 단체 관광이나 떠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옹색한 살림이 걱정이 되어 그 자녀들에게 나마 꿈을 잃지 말고 힘차게 살아보라는 뜻을 장학금으로 전달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게 아닌가?
사실 이렇게 개체교회 일을 접어두고 나와서 교계를 위해 힘들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들에게 우리는 격려의 갈채를 보내야 하고 때로는 감사의 꽃다발도 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나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빈정대는 게 다반사이고 조소의 눈길로 내리 깔아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교회협의회에 나와서 일하는 것을 보고 감투에 걸신 들렸다느니, 사진 찍기에 환장한 사람들이라느니 험한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사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목사는 늘 심방에 바쁘고, 설교 준비에 바쁘고, 예배 준비에 바쁘고, 이민교회 목사들은 모두 ‘바빠 목사들’이다. 교계를 위해 일하는 목사들은 ‘안 바빠 목사’가 아니라 사실 바빠도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희생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교계 단체장등으로 시간을 헌신하고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을 보면 이젠 존경하고 받들어주는 분위기로 전환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협 임원들이 장학금 마련을 위해 개 교회를 방문하면서 일일식당 식권을 팔러 다닌 모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들은 담임목사님이 나와서 고생한다고 격려하면서 군말 없이 식권을 사서 동참해 준 교회가 많았는가 하면 좀 목회가 된다 싶은 젊은 목사들이 담임하는 교회에 가서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샌퍼난도 밸리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갔더니 담임목사란 자가 내다보기는커녕 동냥에 나선 거지 취급을 하면서 얼굴도 내밀지 않은데다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찾아갔던 목사들이 구박만 받고 얼굴이 뜨거워져 되돌아 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30, 40대에 목회에 성공하면 50대, 60대 목회 선배들을 우습게 깔아뭉개다가는 자기도 나이 들어 후배 목사들에게 그 꼴을 당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모양이다. 교단이 다르고 출신 신학교가 달라도 같은 한인 믿음 공동체의 일원으로 목회하고 있다면 ‘시니어리티’에 대한 정중한 예의는 목회자의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예배당에 교인들이 좀 채워졌다 생각되면 건방 떨지 말고 오히려 더 겸손해지는 낮아짐이 있어야 진정한 영적 리더가 될 수 있거늘 나이든 선배목사들이 찾아가서 목회자 자녀 장학금 마련을 위해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는데 문전박대를 했다? 세상 말로 표현하면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목회란 걸 하면서 어쩌다 성공한다 싶으니 위아래를 알아보지 못해!”라고 한마디 핀잔을 내뱉고 싶지만 그래봐야 똑같은 사람 취급 당할 테니 끓는 속을 달래며 제자리로 돌아 왔을 교협 임원들의 처지가 참 가련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누가 돈 준다고 해서 그런 일에 나서겠는가? 그래도 내게 베푸신 주님 사랑 감사하여, 함께 목회하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작은 희망이 되기 위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준행하기 위하여, 분열과 대립의 이 세상 질서 속에 그래도 여전히 낮아짐을 실천하며 모든 교회는 주안에서 한 몸임을 증거 하기 위하여, 교회를 찾아다니며 사랑을 호소하였거늘 그런 취급을 당하다니 . . . .아마도 유구무언 입을 닫고 교협 임원들은 그 교회 문을 나섰을 것이다.
교회가 제법 대형교회로 성장한다 싶으면 교계의 무슨 단체장을 맡아 달라고 청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렇다면 바쁘다고 엄살떨면서 발만 빼지 말고 대형교회를 이루도록 여건을 형성해준 커뮤니티에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 돈으로라도 협력하는 지혜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덮어놓고 까마귀 우짖는 곳에 백로는 가지 않겠다며 엉뚱한 경계심과 유치한 차별주의에 빠져 선배 목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목사들은 커뮤니티 차원에서 혼쭐을 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대개 그 교회 원로 목사님, 장로님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방법은 있을 수도 있다.
장학금은 이미 전달되었다. 남가주 교협이 구박을 당하면서도 정성스럽게 모은 그 장학금은 목회자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삶속에서 훗날 훈장처럼 빛나고 말 것이다.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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