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gif

<조명환 목사>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주말골퍼 300 야드 날리기’다. 골프 하시는 분들은 금방 이유를 알아 차리셨을 것이다. 지금 놓치면 생전 골프와 담 쌓을 것이라고 겁을 주는 주변의 성화 때문에 드디어 결심을 했다. 그래, 생전처음 한번 골프장에 나가보자고. 그래서 어드레스, 그립, 백스윙, 임팩트. . .뭐 그런 허접한 기본단어 공부를 하면서 티칭 프로에게 종아리(?)를 맞으며 레인지 볼을 때리고 있다. 당연히 골프 채널도 열심히 본다. 도대체 프로란 작자들은 드라이버에 무슨 다이아몬드를 입혔길래 3백 야드까지 날려?
그래서 자주 들여다보는 골프 채널 지난주 토픽은 오랜만에 그린에 복귀한 타이거 우즈였다. 그런데 사실 우즈보다는 얼마 전에 그가 해고한 캐디에게 온통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즈가 해고한 캐디는 누구에게 가고, 대신 우즈는 누굴 캐디로 동반하고 골프장에 나타날 것인가?
지난 주말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브리지스톤 골프 대회는 그래서 타이거 우즈의 재등장, 그의 새로운 캐디, 그가 해고시킨 스티브 윌리암스의 행보에 쏠리고 있었다.
결국 우즈의 새로운 캐디는 친구 브라이언 벨, 그리고 스티브 윌리암스는 호주 출신 애덤 스캇의 캐디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게임의 결과는? 타이거 우즈의 참패였다.
아니 타이거 우즈가 버린 캐디가 새로 모신(?) 애덤 스캇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니 이건 얼마나 묘한 반전의 드라마란 말인가?
그래서 골프계의 지난주 뉴스초점은 챔피언 애덤 스캇이 아니고 그의 캐디 스티브 윌리암스였다. 타이거 우즈와 무려 72승 우승 합작을 이룬 그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후 그가 누구의 캐디가 될 것인지도 관심사였지만 그가 애덤 스캇과 합작하여 보기 좋게 전 주인 타이거 우즈를 박살낸 것이다.
이에 스티브 윌리암스는 타이거 우즈 들으라고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니 우즈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짐작이 간다. 챔피언이 되어 화려한 부활의 축배를 들려고 벼르고 있었건만 우승은 고사하고 하필 자신이 해고시킨 캐디와 짝을 이룬 자에게 우승컵을 빼앗겼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캐디는 우즈와 ‘찰떡 궁합’이란 소리를 들으며 우즈를 ‘골프 황제’에 등극시킨 일등 공신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전화 한 통화로 왜 해고를 당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쳐도 보통 우승 상금의 10%를 챙기는 골프 황제 캐디로서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데 타이거 우즈 들으라고 그렇게 가슴 아픈 소리를 쏟아낼 수 있단 말인가? 골프장에 나서려는 골프 초보가 느끼기엔 영 골프장 매너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머지않아 자서전까지 내겠다는 말까지 흘리면서 어쩌면 타이거 우즈의 감춰진 사생활을 폭로하여 그를 더 골탕 먹일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자 대부분의 주말 골퍼들도 반응은 “그건 아니지. 갑자기 짤려서 좀 분하긴 해도 지켜야 할 기본 매너가 있는 법, 잘못하다간 부메랑이 되어 자신이 다칠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한마디씩 뱉아 내고 있는 중이다. 
갈라선 옛 주인에게 복수의 비수를 날리는 것은 흔해빠진 3류 영화나 소설의 테마이자 동시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정서와도 전혀 무관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신의 어둡고 힘들었던 인생의 꼬라지를 전부 보여드리며 의지하고 살았던 담임목사님과 무슨 일로 꼬여서 헤어질 경우가 생기거나 부득이 교회를 옮기는 일이 발생했을 때 옛날 담임목사님을 입으로 작살내는 경우가 많다. 옛날 우리 목사는 설교가 어떻고, 게으르고, 은혜도 없고, 앞뒤도 안 맞고, 돈만 챙기고, 교인보다 가족부터 챙기고, 귀가 얇아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품위도 없고, 기도원 간다 해놓고 집에서 낮잠 자고 . . .  세상에 굴러다니는 나쁜 말은 모조리 모아다가 옛 담임목사 욕하는데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다.
그런데 그런 험담을 은근히 즐기는 새 담임목사에게 문제는 더 많다. “그래, 너 잘한다”는 식으로 잠자코 듣고 있다가 보상차원에서 장로, 권사 자리 마구 하사(?)하는 목사들도 회개해야 한다. 혼내주기는 커녕 침묵하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목회자들의 비겁한 저질행동이 결국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정당화 시키고 만다.     
골프는 신사스포츠이기 때문에 골프장엔 가래침도 뱉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거룩한 교회 공동체라면 더 말할 게 있겠나? 어쩔수 없이 담임목사가 싫어져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있다 해도 새로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옛날 목사가 어쩌고 저쩌고 욕하지는 말자. 그건 골프장에 가래침 뱉는 매너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스러운 짓이니까.
주일이면 창조주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의 신성한 가치도 깨닫지 못하고 골프채 메고 덜렁덜렁 골프장으로 향하는 싱거운 골퍼들보다는 크리스천이라면 좀 더 성숙한 인격의 수준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찰떡궁합이 어느날 갑자기 철천지 원수사이로 갈라설 수 있는 게 연약한 인간관계의 함정이라 할지라도 타이거 우즈의 옛 캐디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코 고상한 일은 아니다.
비록 좋지 않게 헤어졌을지라도 옛날 담임목사님의 허물을 덮어주고 옮겨간 교회에서는 끝내 그 분에 관해 침묵을 지켜주는 자가 황금의 입을 가진 고상한 크리스천이 아닐까?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