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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담임 목사 중엔 난 교회 돈 100달러도 내 맘대로 못한다고 엄살을 떠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속물스러운 돈과는 아주 거리가 먼 청빈과 순결의 상징처럼 자신이 비쳐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교회가 커져서 아무리 대형교회가 되었다 해도 교회 헌금을 계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난 몰라, 계산된 헌금 액수가 얼마인지도 난 몰라, 그 헌금들이 어떤 은행 무슨 구좌로 입금되는지도 난 몰라, 지금 은행 구좌에는 어느 정도의 밸런스가 잠자고 있는지도 난 몰라, 교회 체크에 누가 싸인하는지도 난 몰라, 교회 재정이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난 전혀 몰라. . .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겠다는 사도행전적 목사의 이상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목사가 있다면 화 있을진저! 쫓겨날 날이 멀지 않으리라. 이건 죄질이 심각한 담임목사의 무능, 혹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아이들 여름 방학 이용해 어려운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하다 찾아온 후배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교회 돈은 난 몰라요, 혼자 사는 고령의 사모님이 어려움을 호소 해 왔는데도 교회 돈은 난 몰라요, 원로목사님 부부와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산서를 원로목사에게 넘겨주며 교회 돈은 난 몰라요, 노숙자 선교에 어려움이 많아져서 얼마를 좀 지원해 달라고 간청하는  같은 교단 동료 목회자에게도 교회 돈은 난 몰라요, 이런 식으로 교회 돈은 결코 만져서는 안 되는 흉물로 생각하는 담임 목사가 있다면 이건 신학교에 가서 목사 수업을 다시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다른 건 몰라도 헌금을 드릴 때 봉헌기도는 대개 담임목사가 맡는다.
바친 자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드려지는 헌금이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임 받게 해달라고, 그래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대제사장이 된 기분으로 헌금을 놓고 그토록 간절하게 소원을 하나님께 아뢴 자가 그 헌금에서 단 100달러도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세워 놓지 못했다면 기도의 진정성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런 자를 담임목사로 세운 교회도 한심할 뿐이다.
한국에선 담임목사가 교회 헌금을 자신의 개인 호주머니 돈 쓰듯 하면서 재벌 행세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미국에선 교회 장로들에게 꽁꽁 묶여서(?) 교회 공금 100달러도 자기 맘대로 지출하지 못하는 ‘맹꽁이’ 목사들이 수두룩해져서 문제인 것 같다.
요즘 신사도 운동을 주창했다가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있는 피터 와그너 박사가 한때 그런 말을 했다.
대형 교회 담임목사는 목자(Shepherd)의 형태에서 벗어나 목장 경영자(Rancher)의 형태로 바꿔져야 한다고. 그러니까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 목자라면 목장 경영자는 조직을 잘 관리하는 행정 책임자의 역할을 잘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큰 교회일수록 담임목사는 교회의 행정 수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행정수반이 교회 돈 100달러를 지출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라면 그의 지도력이나 분별력은 빵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는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하찮은 100달러의 체크라 할지라도 이건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읽어내는 패스토랄 디렉터가 담임목사다.   
대형교회에선 영수증 없이 쓰라고 담임목사에게 드리는 목회 활동비란게 있다.
그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라 할지라도 목사님의 손에서 언제나 주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쓰임 받을 것이란 담임목사에 대한 철썩같은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민교회에선 목사님 맘대로 쓰라는 목회 활동비란게 넉넉치 못하다. 없는 교회도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돈 100달러도 맘대로 못 쓰는 옹색한 현실이 이민교회의 재정형편이다.
그러나 대형교회 축에 끼는 교회들은 둘러대는 변명이 따로 있다.
“우리 교회는 시스템이 움직인다,” “우리 교회 재정은 모두 집사님들이 관리한다”며 담임목사는 교회 재정에 관해 언터치어블이라고 외치는 교회들을 보면 대형교회가 된 것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 질 때가 많다.
그런 교회 담임목사들이 포커 페이스를 하고 대단한 리더라도 된 것처럼 나타나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엔 저렇게 목회해서 도대체 무슨 보람이 있어 목회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불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시스템이 움직이다 보면 정확할지는 몰라도 냉냉하고 기계적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눈물, 섬김, 격려, 은혜, 겸손, 용서란 윤활유가 스며들어 노이지가 심하고 뒤죽박죽이 되어도 그게 교회이지 시스템은 무슨 시스템?
찾아온 오지 선교사에게 담임목사 맘대로 100달러도 시원하게 건네 줄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그런 시스템을 우리 주님께서 반가워나 하실까?
담임목사가 강물에 100달러 짜리 지폐를 하염없이 던져 버린다 해도 저건 하나님의 뜻이며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담임목사를 100% 믿어주는 교회는 행복한 교회다.
그리고 그런 신뢰를 얻고 있는 목사는 목회가 좀 부실할지라도 한없이 행복한 목사다.
맘대로 100달러도 쓸 수 없는 대형교회 목사는 목회 불합격 판정을 받아 보따리 싸가지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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