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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연합감리교 원로목사이신 김택규 목사님은 내 이메일로 좋은 글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인터넷 정보 전달자이시다.
바빠서 열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때도 많지만 가끔 가슴을 치는 감동적인 글들도 숨어 있다.
며칠 전에는 몇 편의 시(詩)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일본인 ‘시바타 도요’란 금년 100세 할머니가 쓴 시들이었다.
100세 할머니가 시집을 냈다고? 한참 오버했다는 생각도 들고 노망난 할머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 엔을 털어 첫 시집을 냈다는 것이다.
세상말로 ‘저승사자’가 문 앞에 와서 기다리는 시간에 그 동안 고이 모은 장례비용을 털어서 시집을 낸 할머니. . .그런데 시집의 제목이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약해 지지마’였다.
한 평생을 마감할 시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그런 멜랑콜리한 훈계조 시가 아니라 그 나이에 누굴 보고 약해지지 말라고? 참으로 대단한 할머니라고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일평생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진 풍파를 헤치며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인생이었다.
1911년에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도요는 열 살 무렵에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중퇴했다.
가방끈도 짧고 문교부 혜택도 없는 인생이었다. 요리점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로 살았다.
요즘 말로는 도우미 아줌마요, 옛날 말로는 식모였다.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33세에 한 요리사와 재혼을 하고 아들까지 두고 재봉 일을 해가면서 살았다.
1992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우쓰노미야란 도시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살았다. 
학교 중퇴, 식모, 이혼, 재혼, 사별, 가난, 독거노인,  . . 인생길에 찾아든 수많은 절망 때문에 서럽고 힘들어 자살을 결심까지 했었다는 이 할머니의 시집이 지금 일본 열도를 울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시를 읽는 이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무려 100만부가 팔려 나갔다는 것. 아무리 읽어도 알아먹을 수 없는 혼자 주절대는 헛소리 수준의 현대시가 아니라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100세 할머니의 나지막한 희망가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배운 것도 없고 늘 가난에 짓눌려 살아야 했던 이 100세 할머니가 아직도 자기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훨씬 많은 수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너도 약해 지지마.”
금년 내 나이가 벌써 ‘5학년 9반’이다. 내년이면 이제 ‘6학년’ . . .  가끔 사무실 유리창 가에 서서 LA 국제공항으로 쉴 새 없이 내려앉는 무수한 여객기들을 바라보며 “이제 나도 살아야 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허무주의에 빠질 때가 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주님을 알고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생애를 마감하겠지만 그래도 죽음은 무섭고 허무한 것 아닌가? 
요즘 ‘9988234(99세 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팍 죽어버리는 인생)’가 나이 드는 이들의 키워드라고 한다.
그런데 99세까지 산다는 것은 범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99세까지 살다보면 “지겨워요. 주님, 제발 빨리 불러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이민사회도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교회를 가 봐도 젊은이는 별로 없다. 원로목사님들도 엄청 많아지고 있다.
의학이 발달되고 좋다는 약들은 밟힐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오래 살아 뭘 하겠는가? 꾸역꾸역 밥이나 삼키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침대에 들어갔다 다시 일어나는 의미 없는 365일을 살아 뭐하겠는가? 연방정부 소셜 기금만 하염없이 축내는 범죄행위인 셈이다.
그래서 “재수 없으면 100살 까지 산다”는 농담도 나왔다.
그러나 도요 할머니처럼 장례비용을 털어 시집을 낼 만큼 해야 할 일을 찾는 이에겐 결코 100세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5학년 9반이라고 벌써 허무주의에 빠지지 말고 할머니의 당부처럼 약해지지 말자. 할 일이 있는 자에겐 100세에도 희망은 있다. 약해지지 말자.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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