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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한국은 바야흐로 정치 춘삼월이 밝아온 것처럼 보인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누가 공천을 받았다고 대서특필이고 누가 공천에서 떨어 졌다고 뉴스 속보로 뜨고 있다.
조용하고 경건해야 할 금년 사순절이 총선 공천 때문에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고 북새통이다.
우선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려면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탈당선언을 하고 무소속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엔 공천을 거부한 소속 정당의 등 뒤에 배반의 칼을 들이대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선거철이 되면 몰래 숨어 있던 정당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 . . 듣도 보지도 못한 군소정당들이 어미닭의 품에서 기어 나오는 노란 병아리들처럼 줄을 서는 모습이다. 있거나 말거나 한 정당들이 수없이 난립한다 해도 한국도 미국처럼 양당구도를 이루어 여야 두 정당의 빽에 의지하여 입후보를 해야 가는 길이 쉬어지므로 죽자 사자 공천에 목을 매는 경우를 보고 있다.
공천과정에서 흔히 오고가는 말들이 ‘친박계,’ 또는 ‘친이계’란 말들이다. 친박계란 새누리 당의 박근혜 위원장과 가까운 사람이란 뜻이고, 친이계란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란 뜻에서 그리 분류하는 모양이다. 친이계인데도 친박계를 물리치고 공천을 받았다느니 또는 친이계가 좀 낙천했다하여 친이계에 대한 친박계의 대학살이라느니 이런 저런 험악한 말들이 오고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가 되니 탈당이란 말도 여기저기 울려 퍼지고 백의종군 혹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란 말들도 들려오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가장 외로운 이미지로 다가서는 고독한 낱말이 바로 이 ‘무소속’이란 말이다. 무소속이란 말을 들으면 아무 정치 서클에 끼지 못해, 아니면 어디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마치 황량한 사막의 석양 무렵에 어느 낯선 마을에 등장하는 서부활극의 정의로운 총잡이가 연상되곤 한다.
미국에서도 한창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티 파티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나섰던 미셀 바크만이나 남부 바이블 벨트 크리스천들의 지지를 업고 나왔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도 경선 초기 지지율이 부진하여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 나섰는데 누구하나 공화당을 버리고 무소속 출마를 거론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무소속은 그렇게 춥고 어려운 길인 것 같다.
여기 미국 사는 이민자들은 한국 정치에 관한한 모두 무소속인 경우가 많다. 물론 미주 동포가운데도 비례 대표 후보 신청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이번 총선부터 해외 교포 참정권 실현을 위해 유권자 등록이 실시되긴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 미미한 수준이었다.
나 같은 시민권자에겐 해외 동포들에게 주는 참정권이란 것도 그림의 떡이다. 한국 총선은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처치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조국의 운명을 놓고 늘 기도하는 이민자들이라면 총선이란 대단한 정치적 이벤트를 심심풀이로 구경만 해서는 사실 조국에 대한 도덕적 결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선거판에 얼이 빠진 대한민국이 미국 동포들의 그런 갸륵한 조국 사랑을 알아주기나 하겠는가?
한가지 마음 편한 것은 우리들에겐 친박계니 친이계니 하면서 등 돌릴 일이 없어서 좋다는 점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서클이란게 그리워질 때도 있다. 어딘가 소속되어 살고 싶은 막연한 기대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소수민족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한인들이 하나의 서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너무 개념 없는 말로 들린다. 친밀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들의 소속감을 살려주는 유일한 곳이 한인교회다. “나는 어느 어느 교회의 교인입니다.” 이 소속감 하나 만큼은 대부분의 미주 한인들이 누리고 있는 확실한 정체성이다. 최근에서야 하나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템이 동창회일 것이다. 연말 LA 한인타운 주변에서 개최되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회 송년파티 모습을 보라. 소속감에 목말라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듯하다. 요즘엔 등산 동호회, 마라톤 동호회, 낚시 동호회와 같은 취미 서클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무소속을 두려워하는 이민자들의 외로운 표정이 거기서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소속감에 대한 갈증은 교회 다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것으로 직성이 안풀려 출석교회 안에서 또 서클을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친골프계, 친낙찰계, 친등산계, 친테니스계, 거기다가 더 골치 아픈 서클은 친목사계, 친장로계등으로 교회 내에서 세속 정치서클처럼 기능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의 파벌활동이다.
교회에서 사역의 효율성을 높여가기 위해 서클이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실 다양한 개체교회의 선교회도 어찌 보면 서클활동이요, 속회나 목장, 셀 처치가 서클인 셈이다. 그런데 목적이 엉뚱하면 서클은 교회에서 골치 덩어리로 둔갑한다. 골프가 좋으면 주말 골퍼들끼리 모이면 된다. 구지 교회 내에 골프 클럽을 조직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더욱 걱정스러운 꼴은 교회 내에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친목사계로 활동한다던지, 담임목사에게 계속 견제구를 날리기 위해 장로 몇 사람이 주동이 되어 친장로계를 형성해 간다면 아아! 이건 한국의 총선 공천 현장보다 더 어지러운 아사리 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 차려 회개할 일이다.
교회에서는 친목사계도 필요 없고 친장로계도 가당치 않다. 제일 행복한 교회 생활은 무소속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가 전제되어야 한다. 무소속이라 할지라도 끈 풀린 고무풍선이 아니라 분명한 소속 하나, 그것은 바로 ‘친예수계’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한곳에 소속된 곳 없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것 하나만으로 늘 감사하여 언제나 친예수계를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서클 간에 일어나는 교회의 마찰과 균열을 땜빵하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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