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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해 중국 대사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탈북자 1호 박사’ 이애란 박사를 찾아 갔다고 한다.
내가 안 교수에 대해 아는 것이라면 박근혜 대표와 안철수 교수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항상 붙어 다니는 짝꿍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까 차기 대통령 감으로 일찌감치 젊은 층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 시장과 어울려 다니면서 진보라고 떠드는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겠거니 했는데 그가 탈북자 북송 반대 항의 시위현장을 찾았다고 하니 이제사 젊은이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눈치 챌 것 같기도 하다.
인권은 이념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면서 강제 북송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격려했다는 소식에 그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진보 좌파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탈북자의 탈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가 탈북자들이 강제로 송환되어 오면 3대를 멸족하겠다고 소름끼치는 말을 해도 그저 못들은 척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거짓 쑈에 불과하다고 비아냥대고 있다하니 그 사람들의 심보를 알만하다.
한때 나라를 뒤덮던 ‘광우병 촛불’은 모두 어디 숨어 있단 말인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이런 대목이다.
광우병 데모 때 살던 국민들하고 탈북자 북송 반대를 외쳐야 할 국민들은 서로 딴 나라 사람들인가?
지금 한국에선 지방 자치단체까지 성명을 발표하고 여기저기서 탈북자 북송 규탄대회가 열리고 미 의회와 UN 인권 위원회 등에서도 탈북자 문제는 지구촌 잇슈로 떠오르는 자유세계의 현안이 되고 있다.
나는 차인표 씨가 주연으로 나와서 이곳 LA에서도 상영되었던 ‘크로싱’이란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비만과 싸우느라 일 년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미국 사는 사람들은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 앞에 좀 민망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영화다.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린 임신한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는 아버지,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도착한 그 아버지의 주선으로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는 아들, 이미 어머니를 여윈 아들은 고아처럼 중국 국경지대 몽골 사막에 내던져지지만 결국 축구공을 선물로 준비하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채 사막에서 목숨을 잃고 마는 탈북자들의 목숨내 건 크로싱을 보면서 저들이 바로 우리들의 동포라는 생각에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이 되곤 한다.
주인공인 용수가 “왜 예수 그리스도는 남한에만 있고 북한에는 없느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라는데 북한 사람들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는 외침은 마치 이 시대의 기독교를 향하여 던지는 선지자의 절규처럼 들려온다.
이 영화를 보면 북한 인권에 침묵해온 지구촌의 자유인들은 짐승처럼 죽어가는 그 불쌍한 형제들에 대해 무관심의 공범자란 생각이 든다. 남북관계나 6자회담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야 바른 방향인지 그 정치적인 해법은 잘 모른다 치더라도 문명한 지구촌 한구석, 그것도 우리 조국 한반도 한 모퉁이에서 저런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침묵과 무관심은 바로 죄악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는 왜 지금도 영화 ‘쉰들러스 리스트’를 보며 감동 하는가? 나찌 당원이요, 유태인 노동력을 착취해서 이윤을 챙기는 치졸한 속물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양심의 소리에 순응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1,100여명의 유태인을 살려내는 오스카 쉰들러의 휴먼 스토리 . . . . 그를 움직이는 양심의 파워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유태인이 “당신은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이름들을 보십시오. 당신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자 쉰들러는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내가 갖고 있었던 차를 팔았다면 10명의 영혼을 더 구원할 수 있었을 텐데. . .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외투위에 있는 금배지를 팔았다면 2명의 영혼을 더 구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중국대륙에서 공포에 질려 헤매고 있는 탈북자들의 운명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만  명의 인디언들이 죽임을 당할 때 오스카 쉰들러는 있었는가? 크메르 루지에게 참혹하게 살육을 당하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오스카 쉰들러는 누구였는가? 베트콩의 침략을 받아 메콩강이 피바다가 되는 월남 전쟁에서 오스카 쉰들러는 있었는가? 홍위병의 공격으로 중국 대륙이 죽음의 대륙으로 변해 갈 때 그때는 누가 오스카 쉰들러였는가?
훗날 역사는 물을 것이다. 탈북자들이 중국 대륙을 떠돌다 체포되어 강제로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을 때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아선 오스카 쉰들러는 없었느냐고? 당신은 비록 쉰들러는 아니더라도 탈북자 인권을 위해 어디 목소리를 한번 높여 본 적이 있느냐고.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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