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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에디 롱 목사는 금년 59세로 아틀란타에 있는 새 생명 침례교회 담임목사다.
기독교 방송인 트리니티 네트웍(TBN)을 보면 좀 이상한 경우를 많이 본다.
설교하러 나온 목사들이 학예회에 나온 여학생들의 요란한 반짝이 의상을 입고 흰 구두, 빨간 넥타이, 금으로 물들인 고급의자에 앉아 있다가 무선 마이크, 혹은 용감하게 볼에다 테입을 붙여 입술근처까지 새끼 마이크 줄을 끌어당겨 핸즈 프리 자세로 연단에 서서는 정신없이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경우다.
실례가 될지는 몰라도 솔직히 말하면 시골 캬바레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전 세계 170여 개 국에서 약 2억 명이 이 TBN을 통해 그런 설교방송을 시청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 나오는 목사 중 한명이 에디 롱이다.
물론 흑인 교회 예배분위기가 우리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어느 때는 참 황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에디 롱 목사가 지난 1월 29일 자기 교회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는 세레머니를 가진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개신교와 유대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니까 에디 롱이 유대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 왔던 메시야요,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발견되었다는 모세 5경이 적힌 두루마리로 에디 롱을 한 바퀴 감았다가 의자에 앉힌 후 네 명의 건장한 흑인 청년들이 의자에 앉은 그를 어깨에 메고 연단을 한 바퀴 도는 이 어처구니없는 왕의 즉위식은 한 유대교 랍비에 의해 약 10분간 진행되었다.
이건 어른들이 벌이는 이상한 추리 실험극, 아니면 종교적 푸닥거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교회 약 2만 5천명의 신도들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아멘을 연발하고, 흥분되어 찬양을 부르고 있는 게 문제였다.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는 메시야가 나타났다는 말에 유대교에서는 그건 허무맹랑한 퍼포먼스라고 강력하게 비난했고 개신교에서도 여기저기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에디 롱 목사는 어떨 결에 일어난 일이라며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장면은 TBN을 통해 전 세계로,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이미 70여만 명이 접속하여 시청한 상태다.
이건 하나의 코메디에 불과했다고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것일까?
그는 동성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어 말썽을 빚기도 했고 최근 두 번째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강단을 잠시 떠나 가족을 돌보겠다더니 2달 만에 다시 나타나 이같은 쌩쇼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 목사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쓰시는 큰 종이라고 존경받아야 마땅할까? 신학교에서 신구약 개론 정도라도 꼼꼼하게 훑어 봤더라면 교회 예배당에서 이같은 ‘개그 콘서트’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목사도 제발 공부 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얻은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목사 안수 받은 후에는 평생 그걸 울겨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목사에게 에디 롱 해프닝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머리가 돌처럼 굳어있으면 목사가 아니라 ‘석사’다. 먹고 살기위한 호구지책으로 목회하고 있다면 그건 ‘먹사’일 것이다.
가는 교회마다 목회에 죽을 쑤고 있다면 그건 ‘죽사’라고 할까? 석사, 먹사, 죽사는 우리 시대 모든 목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내재해 있는 부분 함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를 죽 쑤고 있거나, 마지못해 월급받기 위해 목회를 할지라도 목사는 우선 공부는 해놓고 봐야 한다.
그래야 성직자요, 그래야 교회 리더로서의 기본적인 인테그리티는 보존해 갈수 있다.
이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이니까 연장 교육 같은 것은 깔아뭉개고 책방에 들러 대형 교회 목회자 설교집이나 왕창 사들여서 대형교회 베끼는 것을 목회라고 생각하면 제2의 에디 롱 목사는 우리 한인교계에도 집단으로 출현 할 수 있다.
사실 에디 롱이야 하도 유명한 목사이고 TBN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니까 그가 이상한 세레머니를 한 것이 금방 탄로나서 CNN까지 들고 일어나 수습이 되긴 했지만 우리네 일반적인 목회현장에서도 유대인의 왕 대관식과 맞먹는 푸닥거리가 무수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묻혀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교회 헌금은 줄어들고 쓸 곳은 많고 그렇다고 새 신자가 구름처럼 몰려오지도 않는다.
열심히 앞문에 신경을 쓰다 보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곱빼기로 많아 진다.
금융위기 이후 이처럼 어려워진 이민교회 현장에서 때로 절망의 순간 찾아온다 할지라도, 목사님들이여, 나의 동역자들이여, 가난하고 배고플 때 일수록 당당하게 바른 길을 선택하여 주님을 따르자.
돌출발상으로 무식한 교회 망신 퍼포먼스 같은 것은 상상하지도 말자.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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